양선규 대규교대 명예교수
양선규 대규교대 명예교수

무협(武俠) 장르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우주의 중력(重力)을 깡그리 무시하는, 그 종횡무진하는 경신술(輕身術)에 있습니다. 지붕 위를 붕붕 떠서 날아다니고, 휘청거리는 대나무 가지 위에서도 뒷짐 지고 태연히 칼싸움을 벌이는, 오직 상상으로만 가능한 세계를 무협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보여줍니다. 땅바닥에 딱 붙어살 수밖에 없는 운명인 우리는 그런 ‘중력으로부터의 자유’가 너무 통쾌합니다. 그런 ‘통쾌한 상상’이 일망무애(一望无涯)로 펼쳐지는 곳이 바로 강호(江湖)입니다.

경신술에 견주면, 그 나머지의 현란한 무술적 기예들은 고작해야 삼류에 불과합니다. 그런 것들은 누구나 피나는 연습을 통해서 이룰 수 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을 부단히 수련해서 아무나 할 수 없는 경지로 올려놓는다”라는 무도(武道)의 금과옥조는 무협지에서는 큰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무협지는 그것보다 더 큰 이야기의 목적에 봉사하기 때문입니다. 천부적으로 타고난 인간의 해방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무협지의 존재 이유입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한다”가 무협지의 제1의 과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특별한 목적을 위해 따로 마련된 장소가 바로 강호인 것입니다.

무림 강호를 묘사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필수 모티프가 몇 개 있습니다. ①상선지기(上善志氣)를 지닌 주인공이 등장한다. ②주인공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혹독한 박해를 받고 고립된다. ③주인공을 돕는 조력자(무림기인, 연인)가 나타나서 주인공은 엄청난 무공을 쌓게 된다. ④오해와 음모를 극복하고 주인공이 무림의 악을 소탕한다. 이상의 필수 모티프를 중심으로 무협지마다 조금씩 다른 자유 모티프들이 가미됩니다. 몇 개 골라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⑤강호는 결코 배은망덕을 용서하지 않는다. ⑥무림정파에서 빌런(거대악)이 나온다. ⑦강호에는 숨은 고수가 많다. ⑧가족을 건드리면 반드시 망한다. ⑨빌런의 최측근 하수가 배신하고 더 큰 악을 저지른다. ⑩주인공의 복수가 무림의 평화를 가져온다.

경신술(輕身術)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강호(江湖)’라는 말은 자연(自然)이라는 원뜻에서 승부의 세계, 성취의 세계, 의리의 세계, 호연지기의 세계 등으로 그 외연을 넓혀간 단어입니다. 세간의 잇속과 율법에 한눈팔지 않고 오직 무공의 성취에 몰두하는 한편, 불의를 보면 그 자리에서 바로 응징하는 무협들의 활약 공간이 바로 강호입니다. ‘현실의 중력’을 간절히 벗어나고픈 소시민들의 열망이 만들어낸 일종의 가상공간인 것입니다. 인간이 지닌 두 개의 공간(현실의 공간과 상상의 공간)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곳이 강호입니다. 자기가 지닌 힘(무공)을 무기로 온갖 악을 자행하는 자들이 판을 치는 곳이면서 동시에 의리와 우정을 덕으로 삼고 자강불식의 무도를 닦는 일로 업을 삼는 상선지기의 인사들이 웅거하고 있는 곳이 강호입니다.

다가오는 4·10 총선을 대비해서 각 당마다 좋은 인사를 공천하기 위해서 시스템공천이니 인재영입이니 물갈이니 하면서 온갖 묘방을 짜내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듣기 거북한 불협화음도 일고 같은 문파 안에서도 여러 작은 파벌들이 갈라서기도 합니다. 마치 한 편의 무협지를 보는 느낌입니다. 자신들의 무공을 과장해서 선전하고 서로 무림정파임을 내세우면서 상대편의 파렴치한 행태를 앞다투어 고변합니다. 자신들이 강호의 주인이 되지 않으면 조만간에 강호에 큰 불행이 찾아올 것처럼 떠듭니다. 모두 강호의 주인이 되겠다는 일념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정치판의 선거를 무림강호에 빗대어 본다면 누가 강호의 주인이 될 것인가는 불을 보듯 명확해집니다. 상선지기를 지닌 주인공의 복수가 무림의 평화를 가져온다는 게 무협지의 공식 결말입니다. 당연히 그 결말에 부응하는 쪽이 승리합니다. 강호가 원래 그런 곳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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