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욱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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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2022년 ‘8촌 이내 혼인을 무효로 한다’는 민법 조항이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이후 보완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법무부가 가까운 친족간의 결혼을 금지하는 근친혼의 범위 등을 규정하는 법률 개정을 위한 연구 용역을 발주하면서 다시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했다.

근친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옛날부터 지속되고 있는 논쟁거리다. 동양에서는 예법을 중시한 고대 중국 주나라는 아버지의 성이 같으면 혼인을 금지했다. 주나라 예법 주례(周禮)를 따랐던 조선시대에는 동성동본 결혼은 불가였다. 조선시대 이후 지속됐던 동성동본 금혼이 깨진 것은 1997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이후다. 동성동본이라도 8촌 이내가 아니면 결혼이 가능하게 완화됐다.

근친혼이 묵인되던 시대가 있었다.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왕실이나 귀족계층에서는 동성이나 이성을 불문하고 근친혼이 행해졌다. 신라 김유신과 김춘추의 관계가 좋은 예다.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는 김춘추에게 시집갔는데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인 지소부인이 김유신과 결혼해 김유신 부부는 외삼촌과 조카딸 간이 된다. 결과적으로 김유신은 김춘추의 처남 겸 사위이며 김춘추는 김유신의 매제 겸 장인이다.

법무부가 법 개정을 위해 용역을 맡긴 보고서에는 친족 간 혼인 금지 범위를 8촌에서 4촌으로 축소하는 방안이 담겼다. 일부 법조계 인사들은 8촌 이내 금혼 조항이 개인을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전제된 것이라 본다. 장차 도래하고 있는 다문화사회와도 맞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전국 유림은 5촌 사이 혼인이 가능해지면 인륜이 무너지고 족보가 엉망이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성씨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처럼 논란이 첨예한 만큼 충분한 논의와 여론 수렴을 거쳐 근친혼 범위를 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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