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한 수필가·전 상주문화회관장
김종한 수필가·전 상주문화회관장

경상도의 뿌리 내 고향 상주를 떠나 한반도 면적 최대 도시 대구의 명물 건들바위 앞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둥지를 턴 지도 강산도 변하는 10년. ‘자주 보면 이웃사촌, 정들면 고향’이라며 낯설었던 대구도 ‘세월이 약’이라고 달력이 수십 장 넘어가니 환갑 전 제1고향은 상산벌 상주이고 환갑 후 제2의 고향은 달구벌 대구로 대경만세.

말로만 듣던 건들바위는 아담하고 삐쭉하게 서 있는 선돌(立岩)로 바람이 불면 마치 흔들 이듯이 건들건들한다고 ‘건들 바위’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북향 반월당 봉산육거리에서 앞산 남구청으로 쭉 뻗은 대로 따라 남향으로 부는 바람 새고 매섭다. 달리는 전망대 도시철도 3호선을 타고 도시철도 1호선 환승역인 명덕역과 노을이 지면 생각나는 가수 ‘김광석 길’로 가는 신천 대봉교역 중간에 건들바위역 아래 건들바위가 있다.

가톨릭성지 성모당 함께 대구광역시 기념물로 고생대에 암벽의 균열로 생긴 입석으로 옆에 높은 절벽과 더불어 대구분지의 지반구조를 잘 나타내는 오래된 바위다. 삿갓 쓴 늙은이와 같다 하여 또한 ‘삿갓바위’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이곳은 맑은 물이 흘러 낚시를 하면서 즐기던 경치 좋은 명소였다고 한다.

서거정(徐巨正)의 대구 십경(大邱十景) 중의 입암조어(笠巖釣魚) 시제(詩題)가 바로 이곳이다. 정조 때 대구 판관으로 부임한 이서가 이 일대의 하천 범람을 막기 위하여 제방을 쌓아 물줄기를 지금 인근 신천(新川)으로 돌렸기 때문에 현재는 물이 흐르지 않지만, 대프리카 대구 가마솥더위를 식히는 인공폭포수는 있다.

내 고향 상주 시가지로 흐르며 범람하던 냇가를 제방을 쌓아 외각 북천(北川)으로 물길을 돌렸다는 이야기는 대구 건들바위의 도심 물길을 신천(新川)으로 돌린 것과 일맥상통한다. 지금도 땅을 파면 모래흙이 흔하다는 이야기는 물줄기가 지나갔다는 의미다. 곰이 사람이 되었다는 고조선 건국신화와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애국가의 경천애인은 하늘을 공경하고 자연을 숭배하는 원시 신앙인 샤머니즘이 우리나라 국민은 몸에 배어있다.

새벽 정화수(井華水)를 떠 놓고 암자에 촛불 켜고 소원을 비는 소박한 민족이다. 건들바위의 주변은 종교 천국이다. 불교방송, 절, 하느님교회, 대봉성당, 대봉교회, 대성교회, 원불교, 굿하는 무당, 점술가, 신수 사주보는 것까지 다양하게 즐비하다. 어떻게 보면 온갖 신이 다 모여 있는 대구가 따뜻하고 천재지변이 없는 축복 받은 명당이다. 살기가 좋아 노인왕국으로 갑부도 많다.

아기 갖게, 병을 낫게 소원성취를 위해 바위에 양손으로 비비는 비손행위(간단한 무속의례)가 옛날 성행했다. 대구로 이사와 집 앞 건들바위 도시철도역이 생겨 주·야간 환한 정기 받은 건들바위 주변에 재개발 붐으로 아파트와 상가 들어서 매년 줄어든 인구 증가하는 중구 비약적인 발전 어두운 우범지대에서 밝고 활기찬 대구 심장부 변신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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