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호에 비친 내 얼굴
생전 ‘한국의 대표 지성’으로 불렸던 고(故) 이어령(전 문화부장관·시인·평론가)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어느덧 2년째다.

저자가 영면에 들기 직전까지 가장 애정을 쏟았던 유작 시리즈 ‘한국인 이야기’가 일곱 권째를 맞아, 올 2월 26일(이어령 선생 2주기)에 출간됐다.

‘너에게 묻는다’ 4부작, ‘천지인’ 3부작, ‘의식주’ 3부작으로 구성된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전10권) 중 천지인 3부작의 완결편이다.

다방면에 걸친 박학다식함과 창조적 아이디어로 이름이 높던 저자답게,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는 인공지능부터 젓가락을 소재로 한 동양의 식사 문화, 윤동주의 서정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테마로 한국인의 문화와 삶, 과거와 미래를 조감해 왔다.

신간 ‘바이칼호에 비친 내 얼굴’에서는 과학과 인문학의 통섭으로 한국인의 외모에 얽힌 비밀을 풀어낸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세계인들 가운데 한국인의 외양은 몇 가지 도드라지는 점이 있다. 유독 눈이 작고, 코나 귀 등 신체 말단은 뭉툭하고, 털이 적고, 머리는 크다. 그것은 뜨거운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현생인류가 유라시아를 횡단, 시베리아로 북상하다가 매서운 한파에 적응한 결과다.

이 책의 제목에 담긴 바이칼호는 1,550종이 서식하는 생물다양성의 보고로 유명하지만, 현대 동북아시아인의 선조인 고대 인류의 주요 기착지로 인류학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저자 이어령은 그곳의 혹독한 추위가 ‘조각’한 것이 바로 오늘날 한국인의 얼굴이라고 말한다. ‘나그네가 된 원숭이’가 빙하기의 혹한을 견뎌낸 ‘훈장’인 셈이다.

저자는 유전과학을 이야기하는 한편으로, 우리가 과학주의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한 예로, 백인(코카시안)/흑인(니그로이드)/황인(몽골로이드)의 인종 분류법은 실제로는 부정확한 개념임에도 과학의 이름으로 받아들여져 인종차별의 수단으로 오용되어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의 얼굴 생김새를 좌우하는 것은 유전자만이 아니며, 오히려 더 결정적인 요소가 문화다.

한국인의 ‘어려 보이는’ 외모만 해도, 실제로 네오테니(neoteny, 유형성숙)이라는 사회문화적 압력에 따른 유전적 진화의 결과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문화유전(meme)의 결과 역시 외모에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맨얼굴보다 후천적 요소들이 우리의 얼굴을 만드는 데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가령 화장만 보아도 우리의 얼굴을 얼마나 달라지게 하는가.

어느덧 세계적인 화장 강국이 된 대한민국. 성형에도 열성을 쏟으며, 이 덕에 아시아권에서는 독보적인 수준의 화장품 산업과 성형 산업을 이루었다. 저자는 여기서 Cosmetic(화장품, 성형)이라는 말에 주목한다.

“인간의 타고난 얼굴은 완전하지가 않습니다. 일종의 카오스(Chaos·무질서)의 세계입니다. 거기에 질서를 부여해 카오스를 코스모스의 세계로 바꾸는 뜻이 화장, 화장품에 담겨 있어요. 인간은 타고 태어난 것, 주어진 것만으로는 부족한 존재입니다. 그것을 완전하게 만드는 것이 ‘아름다움’이요, ‘조화’입니다.”

그렇다면 그 모든 문화적 소산 중 인간이 자신의 외모를 후천적으로 완성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무엇일까?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바로 표정이다. 문신이나 화장, 성형 같은 요소도 그것에 비하면 아주 부차적인 요소일 뿐이다.

그 표정 중에서도 눈빛은 얼굴의 요점을 이룬다. 눈빛에 사람의 내면이 지닌 불꽃이,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다른 이를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는 이웃들의 얼굴에 우리가 지금 주목해야 할 이유이며,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의 눈을 바라봐야 할 이유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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