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순 경일대 특임교수·방통심의위 특별위원
임한순 경일대 특임교수·방통심의위 특별위원

혜성이 하늘을 가로질러 빠르게 사라졌다. 유난히 밝고 꼬리도 길었다. “혜성은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것이 나타나게 하려는 징조라던데…”

예종 원년(1468년) 10월. 숙직하던 겸사복장(현 대통령 경호처장) 남이가 하늘을 쳐다보며 걱정을 했다. 이시애 난을 평정해 세조의 총애를 받은 그는 26살에 병조판서(정2품)까지 올랐지만 새로 즉위한 예종 측근들의 견제로 종 2품으로 강등돼 있었다. 유자광이 그 말을 들었다. 귀가 번쩍 띄었다. 정적 남이를 칠 절호의 기회였다. “한명회 등 훈신을 제거하기 위해 남이가 신진세력과 모반을 꾸민다”고 예종에게 고변했다. 그리고 그가 몇 년 전 쓴 시 한 편을 증거물로 어전에 올렸다.

“사나이 스무 살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한다면/ 후세에 그 누가 대장부라 이르리오.” 남이는 사흘 뒤 사지가 처참하게 찢기는 거열형에 처해졌다. 걱정 섞인 한숨과 대장부의 격정이 담긴 패기의 글 몇 줄이 그를 사지로 몬 것이다.

설화와 필화로 중도 낙마하는 예비 후보들이 잇따르고 있다.

국민의힘은 장예찬 예비후보(부산 수영) 공천을 취소했다. 공관위는 “10여 년 전 글에서 국민 정서에 반하는 내용이 상당수 확인됐다”고 밝혔다. 같은 당 도태우 후보(대구 중남구)도 4년 전 유튜브에 올린 ‘5·18 북한 개입 시사 발언’에 발목이 잡혔다. 민주당 정봉주 전 의원(서울 강북을)도 7년 전 유튜브 방송이 소환돼 조기 강판됐다. ‘발목지뢰 밟는 사람에게 경품으로 목발을 주자’며 DMZ 목함지뢰 피해를 희화화했다. 같은 당 양문석 후보(안산갑)는 한미 FTA와 관련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불량품’이란 칼럼을 6년 전 쓴 사실이 드러나 친노 진영의 집중공격을 받고 있다.

신진 세력의 우상이 형장의 이슬이 되고, 선량 후보가 고개를 떨군 것은 모두 무심코 내뱉은 말과 글의 역습이다. 예나 지금이나 살얼음판 세상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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