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탈진실(post-truth), 오늘의 총선 풍경을 바라보면 떠오르는 단어다. “여론을 형성할 때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적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 옥스퍼드 영어 사전의 정의다. 인간은 논리보다는 감정에 더 쉽게 반응하고 동조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오류에 빠지게 되고 진실과 거짓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지 않은 사실에는 지나치게 높은 검증 기준을 들이대고, 자신의 신념을 뒷받침해 주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도 맹목적으로 믿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 팬덤이 생겨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려면 팩트와 논리보다는 이해시켜야 하고, 이해보다는 공감하게 해야 한다. 사람은 자기 신념과 다른 사실을 발견하면 원래 생각을 더 강화할 반론을 지어낸다. 공감은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등에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는 것을 말한다. 남을 설득하려면 ‘타인의 개인적 서사’ 속에 들어가 먼저 그의 생각과 신념 등에 공감해 주면서 내 주장에 공감하게 만들어 그의 가치 체계를 흔들어야 한다. 말을 통한 설득의 기술을 다루는 학문이 수사학(rhetoric)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타인을 설득하여 행동을 바꾸기 위해서는 ‘로고스’ ‘에토스’ ‘파토스’가 필요하다고 했다.

로고스(logos)는 논리, 즉 청중의 마음을 이성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주장하는 바가 일단은 이치에 맞아야 한다. 그러나 논리만으로는 사람을 움직일 수 없다. 논리로 사람을 굴복시키면 그 자리에서는 승복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더 강한 반발심을 가질 수 있다. 논리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에토스(ethos)는 윤리(ethics)를 뜻하며, 성실성을 기반으로 청중과의 관계를 확립하는 것을 말한다. 말하는 자가 논리적으로 맞아도 도덕성을 의심받는다면 사람을 움직이기 어렵다. 파토스(pathos)는 패션(passion), 즉 열정을 말하며, 청중에게 분노, 동정, 두려움, 환희 등의 감정을 북돋우는 것이다. 화자가 아무리 탁월한 생각과 신념을 갖고 있어도 표현 방식이 무미건조하거나, 확신에 찬 표정으로 힘차게 전달할 수 없다면 상대를 설득하여 행동하게 할 수 없다. 자기의 견해를 열정적으로 표현해야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링컨, 마틴 루터킹, 윈스턴 처칠, 마거릿 대처, 버락 오바마, 스티브 잡스 등의 연설과 명문장은 로고스와 에토스뿐만 아니라 파토스가 유난히 돋보인다. 유권자가 이번 총선 후보자를 이 세 가지 관점에서 한번 검증해 보면 어떨까 싶다.

간디가 검을 들지 않고, 마르크스가 총을 쏘지 않고도 세상을 움직일 수 있었던 비밀은 레토릭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수사학이란 사람을 속이는 ‘속임수’라고 했다. 교묘한 말솜씨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술은 사람의 마음을 나쁜 길로 홀리는 사기라고 했다. 그는 “리더는 레토릭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진실에 이르는 길은 거기에 없다.”라며 지나친 수사학적 접근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맞는 말이다.

가짜 뉴스가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시대다. “진실이 바지를 입기도 전에 거짓은 지구 저편까지 가 있다”라는 말이 있다. 가짜로 밝혀져도 당사자는 이미 낙인이 찍혀 회복이 어렵다.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 스콧 베들리는 가짜뉴스를 이렇게 식별해 보라고 권한다. 저작권을 확인하라. 여러 출처를 통해 확인하라. 출처의 신뢰성을 평가하라. 정보의 게시 일자를 확인하라. 주제에 대한 기자의 전문성을 평가하라.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일치하는가를 확인하라. 현실성 있는 내용인지 의심하라. 선거 현수막 옆에 조지 오웰의 경구도 같이 걸고 싶은 요즘이다. “거짓이 판치는 시대에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곧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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