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국 영남대학교 경영행정대학원장
박종국 영남대학교 경영행정대학원장

매년 선거철이 되면 곪아있던 지역감정이라는 병이 터지곤 한다. 4월 10일 총선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금 마치 용암이 분출하듯 곳곳에서 지역감정이라는 마그마가 터져 나오고 있다. 아마도 지역감정이라는 고질병이 우리나라가 진일보하는 데 가장 걸림돌이 되어 왔음은 한국 국민이라면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지역감정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다음 기회에 논하기로 하고, 오늘은 동서로 나뉘어 서로를 적대시하는 한국의 현대사 이전에는 각 지역의 특성을 어떻게 규정하였는지를 살펴보자.

약 600여 년 전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때 일등 공신이었던 정도전의 평가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정도전은 경상도 사람을 ‘소나무와 대나무 같은 곧은 절개’(송죽대절·松竹大節)로, 전라도 사람을 ‘바람 앞에 가느다란 버드나무’(풍전세류·風前細柳)로, 경기도 사람을 ‘거울에 비친 미인’(경중미인·鏡中美人)으로, 충청도 사람을 ‘맑은 바람 속 밝은 달’(청풍명월·淸風明月)로 강원도 사람을 ‘바위 아래 늙은 부처’(암하노불·岩下老佛)로, 황해도 사람을 ‘봄 물결에 던진 돌’(춘파투석·春波投石)로, 평안도 사람을 ‘산속의 사나운 호랑이’(산림맹호·山林猛虎)로 비유하였고, 마지막으로 함경도 사람을 ‘진흙밭에서 싸우는 개’(이전투구·泥田鬪狗)로 비유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함경도 출신인 태조 이성계가 자신의 고향을 ‘진흙밭에서 싸우는 개’로 비유하자 안색이 변했다고 한다. 이를 눈치챈 정도전은 함경도를 다시 ‘돌밭에서 밭을 가는 소’(석전경우·石田耕牛)로 그 비유를 바꾸었다. 이에 태조는 흡족해하고 큰 상을 내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본래 정도전이 함경도인을 이전투구(泥田鬪狗)라 한 것은 싸움을 시작한 개는 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제 몸이 더러워지는지도 모르고 최선을 다해 싸운다는 의미에서 강인하고 우직한 함경도인의 성격을 빗댄 것이었다. 그런데 태조는 한낱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 정도로 해석하여 언짢아하였고 이를 눈치챈 정도전은 석전경우(石田耕牛)로 바꾼 것이다. 이에 태조 이성계는 흡족해했지만 사실 승리를 위해 일신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싸우는 개나 험한 돌밭을 우직하게 가는 소나 그 뜻에는 차이가 없었다. 해석을 잘못한 태조 이성계의 문제였다.

아마도 정도전이 2024년으로 건너와 경상도 사람을 ‘소나무와 대나무 같은 곧은 절개’(송죽대절·松竹大節)로, 전라도 사람을 ‘바람 앞에 가느다란 버드나무’(풍전세류·風前細柳)로 평가하였다면 오늘의 정치인들은 어떻게 해석하였을까? 경상도 정치인들은 정도전이 전라도 사람은 바람을 탈 줄 아는 버드나무와 같은 융통성 있는 사람으로 비유하고 경상도 사람은 고지식한 소나무에 비유했다고 선동하지 않았을까? 또 전라도 정치인들은 정도전이 경상도 사람은 지조 있는 소나무에 비유하고 전라도 사람들은 줏대 없는 버드나무에 비유했다고 선동하지는 않았을까?

정치인들이 이전투구를 일신의 안위를 위해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로 선동하든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제 몸이 더러워지는지도 모르고 최선을 다하는 우직한 개로 평가하든 그 본질은 석전경우(石田耕牛)임을 주권자인 우리가 알고 있다면 더 이상 정치인들의 편 가름에 놀아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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