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문화예술 교육 현장을 가다 - 5 에필로그

관현악은 물론 타악기까지 갖춘 풀편성 오케스트라를 자랑하는 동평초등학교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고 있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수만리 떨어진,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곳에서 양을 그린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라 생각되었지만 나는 호주머니 속에서 종이 한 장과 만년필을 꺼냈다. 그러나 나는 그때 지리와 역사, 산수, 문법 외에는 배운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사가 양 한 마리를 그려달라는 어린 왕자의 주문에 당황해 하는 모습이다. 암기식 공부를 하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의 모습을 보여 주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의 한 부분이다.

유럽의 문화 예술교육 현장을 둘러보면서 우리 교육 현장에서도 이제 인생을 풍요롭게 가꿀 수 있는,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복지가 되는 그런 교육은 불가능 한 것인가 하고 반문해 본다.

□ 꿈꾸는 어린 왕자

'꿈꾸는 어린 왕자'처럼 무한한 상상력을 가진 그런 어린이, 미래의 어른들을 상상해 보면서 국내의 일부 학교에서 진행되는 혁신적 교육 현장을 살펴봤다.

혁신적인 교육의지를 가진 역사 교사들의 모임인 부산역사마루연구회의 수업 방식이 눈길을 끈다.

부산 중앙중 3학년 역사수업 시간. 이 학교 한선화 교사와 부산 남천중 홍수정 음악교사가 '격동의 역사 을미사변, 뮤지컬과 만나다'라는 주제로 역사-문화예술 통합수업을 진행했다.

성명여중 국어과 최정연교사가 통합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선화 교사는 뮤지컬 '명성황후'의 테마곡 '나 가거든'을 학생들에게 들려준 뒤 이 음악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에 대해 말해 보라고 했다.

최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뮤지컬 명성황후와 우리 근세사의 중요한 사건인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역사와 음악을 통합하는 수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 교사는 지난 10월 8일이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게 시해된 114주기 날이라면서 명성황후의 생가가 있는 경기도 여주군에서 열린 추모식 사진을 보여준 뒤 뮤지컬에서 명성황후를 지키려다 전사한 홍계훈 장군의 얘기로 학생들의 흥미를 이끌어 낸다.

부산역사마루연구회는 학교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역사 학습의 자료를 개발하고 연구하며 그것을 교육 현장에 적용하는 등 역사 학습방법 개선을 위해 지난 2007년 결성됐다.

부산시내 중·고교 역사교사 10명과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파견한 예술 강사 3명 등 총 13명의 회원들은 매주 1차례 모임을 갖고, 방학 때는 예술 강사, 다큐멘터리 감독, 교수 등으로부터 집중연수를 받으며 역사와 문화예술 통합수업 방법을 연구해 학교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 역사와 국어 수업 현장

교사들은 음악 외에도 율동, 그림 그리기, 한 손으로 표현하기, 찰흙으로 만들기 등 문화예술 장르를 역사수업에 시도해 학생들이 폭넓은 역사관을 갖도록 하고 있다.

한선화 교사는 "학생들이 오감을 활용한 열려 있는 정보 수집능력을 갖게 하려면 그것을 자극할 수 있는 음악이든지, 미술이든지 모든 것을 수업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구의 성명여중에서도 혁신적인 교육이 진해되고 있다.

성명여중 1학년 4반 국어수업 시간. 30여 명의 학생들은 1학기 때부터 시작한 문화예술과 관련된 통합교육활동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은 5명씩 7개 모둠으로 나눠 하나의 주제를 정해 통합교육활동을 한 뒤 발표한다.

한 모둠은 학생들이 만든 우드조각품에 대한 심사평을 얘기했고, 또 다른 모둠은 인터뷰를 시연하기도 했고 신문을 만들기도 했다.

이 외에도 연극이나 사물놀이를 선보인 모둠도 있었다.

수업을 진행한 최정연 교사는 "무엇이든 새로운 것에 도전해본 뒤에 느낀 것을 글 쓰거나 정리해 보자. 그리고 서로 생각을 나눠 보자. 하루하루 도전해보고 생각해보고 서로 나눠 보는 가운데 각자의 진로가 조금씩 정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2007년부터 3년째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지원을 받는 문화예술교육 선도학교로 지정된 이 학교는 통합문화예술교육을 하고 있다.

국어과는 문화예술분야 책읽기 활동과 아트북 제작, 도덕과는 영화 읽기를 통한 나의 미래상·진로 찾기, 음악과는 공연 관람을 통한 예술세계 탐방 등 교과간 통합교육으로 학생들의 창의력을 키우고 있다.

연극, 음악 공연 관람을 통한 예술인들과의 만남, 2박3일간 공동창작 캠프 등 현장 체험을 통한 문화예술창작 교육도 다른 학교에서 볼 수 없는 수업이다.

최정연 교사는 "중학교 국어수업은 학생들의 사고력을 키우는 중요한 수업이다. 이런 청소년 시기에 문화예술교육은 문자적 교육활동에서 벗어나 무한한 상상력을 키워주고 다양한 문화예술 현장체험을 함께하면서 스스로의 창의성을 열어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부산 동평초등학교의 경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관현악과 타악기를 모두 갖춘 풀 편성 오케스트라를 운영하고 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방과후 교육활동으로 진행되는 '동평 어린이 오케스트라'는 한 음악교사의 열정으로 탄생했다.

2003년 창단된 이 오케스트라는 20여종의 악기를 보유하고 있다. 89명의 단원들로 음악실이 비좁을 지경이지만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겠다는 학생이 줄을 잇고 있다.

이들 단원들은 성장해서 노래방보다 연주회장을 찾거나 직접 음악을 연주하는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창의적 교육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학교 구성원의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만약 교장선생이 학생들의 성적과 대학 진학에 목을 매고 있다면 이 같은 수없는 진행 될 수 없는 것이다. 당장의 성적 향상에는 도움을 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주위 교사들의 협조 없이도 불가능 한 것이다. '별난선생'이라며 전혀 마음을 열지 않는 교사들이 아직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구자적인 몇 몇 교사들에 의해 우리의 교육 현장이 바뀌어 가고 있고, 우리 어린 왕자들의 꿈도 점점 커져 가고 있다. 문화 예술교육에 투자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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