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탄소제로마을 보봉을 가다

태양전지판을 머리에 인 채 남향으로 줄지어 서 있는 보봉마을의 패시브 하우스(passive house)

20세기가 화석연료를 사용해 풍요를 일군 '탄소경제(Carbon Economy)시대'였다면 21세기는 화석연료의 비용을 지불하는 '탄소 제로경제(Carbon Zero Economy)시대'다. 화석에너지 사용으로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면서 기후변화문제가 전 세계적인 화두가 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7일부터 19일까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는 '지구와 인류를 살릴 마지막 기회'라는 슬로건을 걸고 세계 192개국 1만5천여명이 모여 지구온난화 방지 협약을 논의했지만 구속력 있는 합의를 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이렇게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이제 환경 재앙의 디스토피아(dystopia)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마을의 음식물 쓰레기와 분뇨 등을 발효시켜 발생하는 메탄가스를 이용, 에너지를 얻고 있는 열병합 발전소

세계 각국에서는 이산화탄소 감축을 위한 녹색기술 개발과 새로운 대안 모색에 힘쓰고 있다. 도시계획에 녹색환경 개념을 적극 반영해 세계적인 모범이 되고 있는 독일 보봉(Vauban)은 혁신도시는 물론, 도청이전 등 새로운 도시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대구·경북에 시사점이 많다.

'보봉(Vauban)'이란 이름으로 봐서는 프랑스의 어느 도시 이름 같지만 보봉은 프랑스와 독일, 스위스의 삼각지대에 있는 유럽 친환경 수도 프라이브루크(Freiburg) 도심에서 남쪽으로 약 3㎞ 떨어진 곳에 있는 독일의 생태마을 이름이다. 2차 대전의 패전국인 독일 땅에 프랑스군이 주둔하면서 '보봉'이라는 17세기 건축가 이름이 붙여진 것.

소음을 최소화하고 여름에는 기온을 낮춰주는 효과를 내기 위해 선로에 잔디를 심어 놓은 노면전차 '트램'.

병영지(兵營地) 특유의 스산함이 남아있던 이 마을이 변화를 맞은 것은 1992년 독일이 통일되고 프랑스군이 철수하면서부터다. 자연 속의 삶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1995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시민연합인 '보봉포럼'을 결성해 친환경도시 건설을 주도한다.

마을에 들어서면 주택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집열판이 눈길을 끈다. 보봉의 태양열주택은 '패시브 하우스(passive house)'로 불린다. 철저한 단열로 건물 내부의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한 주택이기 때문이다.

'태양을 행하다'라는 뜻을 가진 보봉마을의 주택 헬리오트롭

마을에는 태양전지판을 머리에 인 솔라 하우스(solar house)가 남향으로 줄지어 서 있다. 태양광 연립주택인 솔라 하우스는 동일한 규모의 일반 가정집을 짓는 것보다 15% 정도 건축비가 더 든다.

그러나 태양광 발전으로 발생하는 수익을 고려하면 추가로 소요되는 건축비는 2년가량이면 회수된다는 게 이 마을 주민 알무트 슈스터씨의 설명이다.

솔라 하우스는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집열판으로 전기를 생산해 남는 전기를 판매하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잉여 에너지 주택(surplus-energy house)'으로 불린다. 이 마을의 주택은 태양광 발전시설과 함께 완벽한 단열시스템을 자랑한다. 빛이 잘 들도록 모두 남향으로 시공된 것은 물론 집의 남쪽 방향으로는 큰 채광창이 나 있고, 바람으로 인한 열 손실을 줄이기 위해 집을 이웃집과 다닥다닥 붙여 지어 놓았다.

보봉마을 주민 알무트 슈스터씨가 마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또 단열재가 들어간 벽이 30㎝가 넘고, 창문은 열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중간에 아르곤가스가 주입된 3중창이다. 환기 시스템 역시 열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열 회수 장치가 돼 있단다.

이처럼 집 그 자체가 발전소 이자 생산되거나 창을 통해 들어온 에너지는 손실을 최소화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별도의 난방 시설이 필요 없다. 난방 시설 없이도 겨울을 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슈스터 씨는 강조했다.

솔라 하우스와 함께 보봉 마을을 대표하는 집이 '헬리오트롭(Heliotrop: 태양을 향하다)'이다. 헬리오트롭은 에너지를 소비하기보다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주택이다. 주택 자체가 해바라기처럼 태양의 움직임을 감지해 회전하게 설계된 목재 3층 건물이다. 역시 3중창과 단열재로 외부로 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고 빗물을 저장해 사용하며 진공관과 우드 팰릿(wood pellet) 보일러로 물을 데워 난방에 사용하는 주택이다.

170만 유로(약31억원)가 든 이 집은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통해 소비전력의 5배 이상을 생산해 지역 전력회사인 바데노바(badenova)사에 판매한다. 태양에너지 건축가 롤프 디쉬씨가 살고 있는 헬리오트롭은 소비 에너지가 모두 재생에너지로 충당되고 탄소 배출을 전혀 하지 않는 탄소제로 주택이다.

마을에는 여러 형태의 특수한 구조와 기능을 가진 집들이 들어서 있다. 아토피를 근원적으로 막아주는 특별한 재료로 지어진 집, 비행기 기내 화장실처럼 물이 필요 없는 화장실을 갖고 있는 집 등 환경과 생태를 고려한 집들이 들어서 있다.

보봉 마을이 탄소제로마을의 모델로 거론되는 것은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교통체계도 한 몫 한다.

마을 입구에는 '파울라 모더존(Pau la modersohn)'이라는 독일 화가의 이름을 붙인 빈 공터가 있다. 유명 여류화가의 이름을 딴 이 공터에 프라이브루크 시가 복합상가를 지으려고 했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비워두고 있다. 보봉포럼은 차량으로부터 자유로운 마을을 만들기 위해 마을 입구에 공동주차장을 만들어 주택단지와 철저하게 구분했다. 공동주차장 역시 지붕에 태양광 전지판이 설치돼 전기를 생산해 낸다.

알무트 슈스터씨는 "공동 주차장을 이용하려면 차 한 대당 1만8천유로를 내야 하는데 노면 전차인 트램(Tram)이 마을을 가로질러 다니기 때문에 아예 차를 사지 않는 주민이 많다"며 "주민 대부분이 트램을 이용하지만 자동차를 함께 타거나 빌려 타는 '카 쉐어링'도 활성화 돼 있다"고 설명했다.

2006년 전차 노선이 마을로 들어오면서 승용차를 이용할 필요성이 확 줄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자동차 대신 전차를 이용하거나 집집마다 1, 2대씩 갖고 있는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이 생활화 돼 있다.

마을 안에는 자동차가 거의 다니지 않기 때문에 골목을 여유롭게 산책하는 사람들이나 깔깔거리며 뛰어노는 아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어린이들의 놀이터도 모두 자연 소재로 만들어 져 있다. 잔 모래가 깔려 있는 놀이터에는 굵직굵직한 바위가 놓여 있고 큰 나무를 깎아 그물을 처 두고 아이들이 오르내리며 즐길 수 있게 해 놓았다. 또 개울 건너의 나무가 우거진 놀이터에서는 불을 피워 자연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었다.

-도심을 흐르는 실개천, 고풍스런 도시의 시계탑을 향해 달리는 트램, 그 옆으로 자전거의 물결이 흐르고, 자전거를 탄 사람이 트램의 사람들과 손을 흔들며 환하게 미소 짓는 풍경….

최근 포스코가 환경기업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CF를 촬영 했던 프라이브루크의 모습이다. 독일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프라이브루크, 그 중에서도 주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마을이 보봉이다.

편리함 보다는 환경을 먼저 생각하는 현존하는 미래의 마을이다.

포항의 지곡 주택단지에 일반 시민들도 들어와서 살 수 있게 개방되면서 무분별하게 건축물이 들어서고 있다. 이 단지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친환경 마을로 가꿔보면 어떨까. 또 새로 조성되는 혁신도시나 도청이전지 등의 도시개발 지역에 이처럼 녹색 생태마을로 계획성 있게 꾸며 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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