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만 포항 스틸러스 사장 취임 2년 만에 스틸러스팀 亞 정상 등극 시킨 '매직손'

지난해 한국에서 가장 행복했던 사람을 꼽으라면 아마 포항 스틸러스 김태만(56·사진)사장이 몇 손가락 안에 꼽힐 것이다. 김 사장은 성적과 흥행, 평가 등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은 행운의 사나이로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포스코에서 30년 간 재직하면서 주로 인사·노무를 맡아 '인사통'으로 불리는 김 사장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팀 면모를 일신했다. 김 사장은 취임 2년 만에 팀을 아시아 정상에 올려놓는 놀라운 수완을 발휘했다. 역대 사장들이 이루지 못한 것을 단기간에 해냈다.

포항은 지난해 국내 프로리그 첫 타이틀인 피스컵을 손에 넣더니 아시아축구연맹(AFC)챔피언스리그 우승컵도 번쩍 들어올렸다. 이어 아시아챔피언 자격으로 출전한 국제축구연맹(FIFA)클럽월드컵에서 당당히 3위에 입상해 아시아축구 실력을 만방에 과시했다. 특히 최근 국제축구역사통계재단(IFFHS)가 발표한 세계클럽랭킹이 56위로 아르헨티나의 최고명문 보카 주니어스(55위)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전 세계 2천여개 1부리그 팀 가운데 포항이 세계적인 클럽들과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수원 삼성(225위), FC 서울(244위)이 포항보다 한참 아래다. 1973년 포항제철로 출범한 포항이 '전통명가'라 불리는 이유가 명쾌해졌다. 포항은 아시아클럽 중 최초로 지난해 6월 IFFHS가 선정한 '이 달의 클럽'에 선정되는 금자탑을 쌓았다.

포항이 이처럼 단기간에 괄목할 성과를 올린 것은 클럽 CEO인 김 사장의 리더십이 곳곳에 스며들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틈틈이 선수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처음엔 사장의 문자에 어색해하던 선수들도 차츰 답장을 보내왔다. 마음의 벽이 서서히 사라졌다. 사장과 선수들간 소통이 원활해지면서 팀워크가 살아났다. 하지만 김 사장의 고민은 다른 데 있었다.

2008년 포항제철소 행정부소장을 끝으로 30년 간 몸담아온 포스코를 떠나 프로축구단 수장을 맡은 김 사장은 팀의 정체성 문제를 놓고 고민을 거듭했다. "포항이 그동안 수많은 국가대표 선수들을 배출하면서 '스타 산실'로 위상을 굳건히 다져왔지만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이동국, 설기현, 박지성 등 태극전사들의 해외진출로 선진 프로축구 리그가 위성 생중계되면서 팬들의 눈높이는 몰라보게 높아졌지만 K-리그는 수십년간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털어놨다.

김 사장은 축구팬들이 성적 그 이상을 요구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그래서 탄생한 것이 실천적 개혁 프로젝트인 '스틸러스 웨이(Steelers Way)'다. 실제경기 시간을 늘려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보여준다는 게 요체다. 깨끗한 경기매너도 강조했다. '성적보다는 감동을 주는 축구를 할 수 없는가'라는 원천적 고민에서 출발한 '스틸러스 웨이'는 축구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를 모델로 하고 있는 '스틸러스 웨이'는 K-리그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그는 "'스틸러스 웨이' 도입 초기 일부 선수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목적이 옳으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신념으로 밀어붙였다.

점점 포항경기가 재미있고 감동적이다는 얘기가 자연스레 입으로 전해졌고 하반기부터 국내 최초의 축구전용구장인 스틸야드에 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드라마틱한 승부가 자주 펼쳐지면서 관중들은 열광했고 빅매치가 열리는 날이면 2만명 규모인 스틸야드가 들썩였다. 썰렁하기만 했던 관중석은 축구열기로 가득찼다. 포항은 홈 24경기 무패(15승9무)행진의 '안방불패' 신화로 성원에 보답했다.

너무 잘나간 탓일까, 김 사장은 5년 간 지휘봉을 잡았던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의 갑작스런 결별통보에 큰 충격을 받았다.

지난해 말 파리아스 감독이 2년 재계약을 파기하고 사우디아라비아 알 아흘리로 떠났다. 운명을 같이 하자던 파리아스 감독이었기에 충격이 더 컸다. 그는 "프로가 돈에 움직이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떠날 때도 프로다워야한다. 그런 점에서 파리아스 감독은 분명 프로답지 못했다. 파리아스 감독이 자녀교육 등 가족문제로 해외진출을 원했고, 진정성을 보였다면 우리도 아름답게 이별하도록 배려할 수 있었는데…"라며 진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 사장은 요즘 의욕에 넘쳐있다. 파리아스 감독과 비교도 할 수 없는 풍부한 경험과 인품을 갖춘 레모스 감독을 영입했기 때문이다.

"오전 8시 30분에 출근해 훈련 준비를 손수한다. 경기장 안팎에서 솔선수범하는 모습에 신뢰가 간다"고 했다. 여기다 K-리그를 거쳐간 외국인 선수 가운데 가장 기량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모따와 대표팀 공격수 설기현, 알짜용병 알미르 등을 보강해 스쿼드가 한층 강화됐다.

김 사장은 "'모따와 설기현, 알미르 등 특급 선수들이 포항이라서 왔다'라고 말해 팀 위상이 높아진 것을 실감한다"고 흐뭇해했다. 지난해 팀이 국내외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축구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그는 축구단 사장을 자원했을 정도로 스포츠에 관심이 많다. 그동안 축구단 사장은 퇴임을 앞둔 포스코 임원이 잠깐 머물다 가는 자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모두가 탐탁지않게 여기던 축구단을 운영해보겠다고 스스로 나섰다.

그의 집무실 중앙 벽면에는 박태준 명예회장의 친필 축전이 액자에 소중히 담겨있다. 지난해 6월 '이 달의 클럽'에 선정되자 박 명예회장이 축전을 보내온 것.

그는 "박태준 명예회장의 축구열정을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에 축구단 사장을 자원했다. 사실은 '스틸러스 웨이'도 창업자의 뜨거운 축구 사랑을 계승하는 차원에서 머리를 짜낸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못하는 운동이 없는 만능 스포츠맨이다. '둥근 것'에 소질이 있다. 골프실력은 "2만명 포스코 직원들 중 으뜸"이라고 평가받을 만큼 출중하다. 50대 후반 나이에도 불구하고 스윙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감독이 '아름다운 축구'를 모토로 하고 있는데 구단 책임자도 뭔가 아름다운 게 있어야하지 않느냐"며 활짝 웃었다.

김 사장의 휴대전화 연결음은 이문세의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 포항 시민들도 축구로 행복해졌으면 한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엔 치명적인 '행복 바이러스'가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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