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

내 어머니는 분명 한쪽 눈이 먼 분이셨다

어릴 적 운동회 날, 실에 매단 밤 따먹기에 나가

알밤은 키 큰 아이들이 모두 따가고

쭉정이 밤 한 톨 겨우 주워온 나를

이것 봐라, 알밤 주워왔다! 고 외치던 어머니는

분명 한쪽 눈이 깊숙이 먼 분이셨다

어머니의 노래는 그 이후에도

30년도 더 넘게 계속되었다

마지막 숨 거두시는 그 순간까지도

예나 지금이나 쭉정이 밤 한 톨

남의 발밑에서 겨우 주워오는

내 손목 치켜세우며

이것 봐라, 내 새끼 알밤 주워왔다! 고

사방에 대고 자랑하셨다

<감상>문득, 삶이 초라하다 느껴질 때 눈을 감고 생각해 보셔요. 나보다 잘난 놈, 재수 좋은 놈, 힘 있는 놈, 많이 가진 놈, 제아무리 설쳐대도 내 어머니 앞에서 그들은 언제나 뒷전이었잖아요. 무슨 배짱으로 그리 당당하게 물고 빨고 추켜세웠는지 그 이유 도통 알 수 없지만, 나는 정말 최고였잖아요. 지금 내 새끼들처럼 말입니다. (권선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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