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현(본사 부사장)

6·2 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새벽은 가고 평온한 아침이다.

지방선거에서 기자회견이 가장 많았던 지역이 경주시장 선거다. 보도자료 1줄이면 될 내용까지 기자들을 불러대어 기자회견장은 참석율 저조로 썰렁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 흠집 내는 폭로성에서부터 수시로 추가되는 공약까지 각 후보별로 매일같이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하면서 선거초반부터 과열 혼탁이 예상됐다. 선거를 이틀 앞둔 31일에는 지역 국회의원까지 가세한 무려 4차례나 기자회견이 열렸고 선거막판까지 선관위의 수사의뢰·고발이 이어졌다. 선거 하루 전인 1일에는 상대후보를 비방하는 괴문서까지 살포되어 경주선거가 막판 까지 과열 혼탁이 도를 넘어 심각한 수준임을 실감케 했다.

선거법위반 사례들이 수사결과에 따라 또 한 차례 파동이 예상된다. 경주시장 선거는 도내에서 후보자가 가장 많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게 사실이다. 9명이 출마했다가 2명이 중도하차하고 막판까지 7명이 경쟁을 벌였기 때문에 선거로 인해 갈등의 골이 깊어져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선거 때 앙금을 말끔히 씻어버리고 모두가 손을 잡아야 할 때다. 화합만이 지역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기간 중 상했던 마음들은 털어버리고 승자는 패자에게 아량을, 패자는 깨끗하게 승복해야 한다. 선거기간 중 공직사회에 나돌았던 악성 루머들은 루머로 끝나야 한다.

살생부가 있다는 유언비어에서부터 ○○후보가 당선되면 칼바람이 불고 ○○후보는 피바람이 분다고 했다. 정말 놀랄 일이다. 줄서기를 하지 않았다고 인사에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 칼바람과 피바람이 불어서는 더욱더 안 된다.

당선자는 선거기간 중 서운했던 일들이 많았겠지만 툭 털어버려야 한다. 공직사회나 지역의 화합은 승자의 아량에 달려 있다. 당선자는 길거리에서 한 표를 꼭 찍어달라고 큰절을 올렸던 낮은 자세를 임기 내내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패자 역시 승자에게 박수를 보낼 때만이 지역이 하나가 되고 민주주의가 꽃피울 수 있을 것이다.

공천이 잘못돼 고배를 마신 지역도 있을 것이고 떨어질 줄 알면서도 당명을 받고 평소의 소신을 알리려 기꺼이 출마한 분도 있을 것이다. 그 뿐인가? 선거 때 입은 충격과 상처에 분을 삼키지 못해 통곡하고 밤잠을 설친 낙선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낙선자는 서운함을 씻어버리고 다음 선거를 기약해야 한다. 시민들은 용서하는 자와 용서받는 자에게 표를 몰아줄 것이다. 용서와 자비의 마음은 고통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열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바보마음으로 사랑을 전하신 것처럼 바보처럼 내게 상처 준 사람과 화해의 손길을 먼저 내밀고 마음을 열어 용서함으로써 건강한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아공의 첫 흑인대통령이 된 만델라는 투투 대주교를 진실화해위원회 의장으로 임명하여 인종차별정책으로 학대받은 사례를 파헤치고 희생자들이나 그 가족들의 명예를 되찾고 배상을 받도록 했다. 희생자들은 자신의 죄를 인정한 가해자들을 용서하기도 했는데 우리도 그런 아픔의 역사가 있었고 그 아픔을 치유하고자 하는 많은 시도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여러 차례 난리를 겪었다. 일제 탄압과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동란으로 국토가 두 동강난 혼란 속에서도 서로 용서하고 배려하고 위로하면서 오늘의 경제발전을 가져온 위대한 국가가 아닌가?

이제 선택은 끝났다. 승자도 패자도 없다. 당선자는 지역화합과 소통에 몸을 던져야 한다. 여러 차례 선거를 치르면서 갈라진 민심을 수습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낙선한 여섯 분의 공약들을 면밀히 살펴보고 필요한 것은 과감하게 수용해야 한다.

선거 기간 중 입은 상처들이 말끔히 아물 수 있는 처방은 화해와 용서 뿐 이다. 지역 발전은 그 길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시민들은 당선자의 통 큰 처신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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