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환(편집위원)

금융이 글로벌 경제재앙을 촉발시키더니 그걸 진정시키고자 돈을 푼 정부가 이젠 적자를 감당치 못하여 남유럽에서 또 어디서 사단을 일으킨다. 세계주식시장 동향의 표준이 되는 모건 스탠리의 자본국제지수(MSCI)가 지난 4월 중순이후 2개월 동안 무려 15%나 폭락했다. 은행간 3개월분 국제단기차입 이자율도 최고수준에 달했다고 하고, 안전자산 쪽으로 선회한 투자가들이 미 정부채권 매입에 몰려 달러가치가 상승한다. 남유럽에서든 어디서든 재정폭탄이 터지면 세계경제는 돌변하여 더블 딥(이중 침체)의 골짜기로 추락케 될 것이다.

아무래도 구조상 대외영향을 누구보다도 많이 받게 돼 있는 한국의 경제순항세가 하반기에 주춤거리게 될 것 같다. 유럽의 재정위기 확대, 중국의 자산거품 그리고 미 정부주도의 회복력 약화 등이 상호작용함으로써 하반기 글로벌 경제의 활력이 둔화될 조짐이다. 한국수출이 상반기만큼 잘 나갈 수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중국이 특히 부동산 거품을 걷어내기 위하여 어느 만큼의 돈줄을 죌지는 모르겠으나, 이 여파에 따라 한국의 대중 수출은 춤출 수밖에 없다. 유럽지역에 대한 수출 증가세 감소는 확실해 보이고, 미국에 대한 수출도 수요감퇴로 둔화될 조짐이다.

정부재정이 사단이 된 하반기 세계경제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가 간 정교한 협력으로 회복기반을 다져나가는 것이다. 정부부채가 금융혼란을 초래하여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면 더블 딥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실물의 기초체력은 단기간 내 상당히 좋아진 상태인데, 국가 이기주의가 발동되는 날에는 2008년 하반기의 경우처럼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중국이 위안화 절상압력에 저항하고, 독일이 국내수요 진작에 소극적인 것이 대표적 국가 이기주의 사례다. 달러가치가 남유럽 발 신용불안으로 상승하자 중국은 위안화 절상을 미루고자 하는 것 같고, 독일을 비롯한 북유럽 제국은 비교적 재정상태가 괜찮은데도 내수를 살리는데 재정을 더 풀려고 하지 않는다.

유로화의 가치하락은 유로존의 수출증대에 도움이 된다. 물론 통화체제가 붕괴될 만큼 걷잡을 수없는 폭락은 위험한 것이긴 하지만, 현재의 하락 정도에서 멈춘다면, 유로존 국가들의 수출을 늘려 재정적자 감축에 일조할 것이다. 허나 독일과 북구제국이 국내경기를 더 활성화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의 수출이 가격경쟁력 회복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 늘어나지 못하게 된다. 중국 또한 내수진작을 통해 유럽과 미국을 도와주어야 한다. 이렇게만 된다면 하반기 세계경제는 체력을 보강하여 견실한 성장세의 선순환 궤도를 이탈치 않게 될 것이다.

현 구도에서는 '수입이 선(善)'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수출만이 절대선'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복잡해진 경제구조상 그런 시대는 지났다. 일본이 저렇게 장기불황에서 탈출하지 못하며 허우적대는 이유 중 하나가 어떻게든 수입을 적게 하여 흑자국을 유지코자 하는 어리석은 정책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과 일본의 수출이란 대기업 위주의 직수출이 대세지만, 수출용 원자재를 제외한 일반제품 수입은 국내에서 판매구조가 다단계로 돼 있다. 판매단계를 늘려주면 단계마다 개입되는 사람들에게 고용과 소득 등 떡고물을 떨어트려 주고, 수입품의 국내판매가격을 인상시켜 국산 경쟁상품을 보호하는 효과도 거두게 된다. 내수 중소기업 집중지원과 수입장려는 내수시장 활성화를 통해 고용기회도 창출하므로 특히 위기를 맞고 있는 그리스와 스페인 등으로부터의 수입을 유도하는 정교한 정책이 필요한 것 같다. 호주와 칠레산보다도 남유럽의 포도주 맛이 더 낫다. 남유럽에 대한 호의는 후에 한국수출 기회로 이어질 것이다.

국가 이기주의 극복의 시금석은 보다 경제사정이 나은 나라들이 국내수요 정책을 펴 위기에 처한 국가들로부터의 수입문호를 넓혀주는 것이다. 금년 하반기 글로벌 경제가 재정위기를 극복하는 과제는 많은 몫이 이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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