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재 훈 <포항강변교회 목사>

아침, 저녁 기온이 피부에 닿을 때는 이제 춥다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 초겨울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지만, 행여 살기가 곤한 이웃들에게는 이미 겨울이 온 것은 아닐까? 겨울이 오면 어려운 이웃들은 더 힘들어진다는데...

늘 가까이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서도 그 이웃의 아픔이나 눈물을 마음으로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때로는 불감증에 걸린 것은 아닌가? 하고 되돌아보게 된다.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는 계단 중간쯤에서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 작은 깡통 하나 내밀어 놓고 지나는 행인들의 동전 한 개를 소망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태연해져 있다는 것은 그만큼 불쌍함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져 버린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신경계에 문제가 있어서 병원에 입원한 가난한 이웃이 있다. 모녀가 살고 있는데 팔순을 바라보는 모친은 쉰을 앞에 놓고 있는 딸의 간호를 위해서 잠시도 긴장감을 놓을 수가 없는 형편이다.

그런 여인에게 근래에 심각한 상태가 될 정도로 팔순의 모친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다행히 사랑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지만 입원이 간단치만 않았음을 병문안을 갔을 때 알게 되었다.

입원실에 함께 하는 환우들이 그녀의 입원을 달갑게 여기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신경계통의 문제를 일으키면서 몸을 부들부들 떨며 뒤척이는 그녀가 조용한 입원실을 어수선하게 만들고, 환자들인 자신들의 안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못들은 척, 못 본 척 하고 병실을 돌아 나오는데 왜 그리 눈물이 나고, 세상이 야속하게 보이는지... 환자가 또 다른 환자를 차별하는 세상이다. 몸이 아파서 치료받으러 왔는데 질병의 부위와 정도에 따라서 동일한 환자들에게 차별을 받아야 하는 세상이 야속했다.

일전에 아파트 단지 내에 기존에 있던 노인정 자리에 2층으로 다시 건립하겠다는 구청의 계획에 대하여 인근 주민들이 조망권 침해라는 이유로, 근처 아파트 주민들은 혐오시설이라는 이유로 노인정 건립 반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인들이 갈 곳을 잃어버렸다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았다.

실제적으로 노인들의 복지시설만의 문제가 아니다. 장애인 복지 시설들 조차 갈 곳이 없다는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런 시설들을 혐오시설이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 양로원, 경로당 등은 사람들이 사는 근처에는 대접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보편화된 정서이다.

언제가 우리 모두는 노인이 된다. 노인이 특별한 몇몇 사람들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우리는 항상 장애인이 될 수 있는 복잡한 세상에 살고 있다.

사건과 사고가 숨 쉴 여유조차 없이 일어나고 터지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선천적 장애가 아닌 후천적 장애는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들과 장애인들의 보금자리나 휴식공간을 혐오시설이라고 하여 반대한다면 반대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서는 모두가 혐오인들이라는 말인가?

노인들과 장애인들은 우리와 다를 바가 없는 존엄한 한 인격자들이다. 그들은 우리와 별개의 존재들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의 이웃들이고 가족들이다. 사람은 누구나 늙어 노인이 되고, 불의의 사고로 장애인이 될 수 있다. 노인과 장애인들을 혐오인 취급하면서 그들의 휴식 공간 건립을 구태여 반대하면서 자신들의 삶의 이기만을 고집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아름다운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서로 돕고, 기대며, 의지하며 살아가는 세상이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반대’ ‘절대 반대’ 라는 말들이 너무 난무하고 있는 것 같다. 좀 더 성숙한 잣대로 세상을 보는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님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 나와 다름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삶, 내게 약간의 불편함과 손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큰 유익이 되고 기쁨이 되게 하는 삶, 더 나아가 나 보다는 너를 먼저 생각하는 삶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다.

저물어 가는 가을날의 밤 기온만큼이나 노인정 건립 반대이유가 내 마음을 차갑게 만든다. 자신들의 질병 증상과 다르다고 하여 병실에 들어 온 이웃한 환자를 향해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를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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