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까지 포스코갤러리서 도예전 "찌든 영혼 씻어주는 작품, 내 손으로 빚었지만 나의 스승

"내 손으로 빚었지만 찌든 영혼을 씻어주는 작품이야말로 오히려 내 스승이지요."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유난히 서정 넘치는 시들이 많다.

오는 28일까지 포스코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는 설봉스님.

산이 고맙고, 돌멩이가 고맙고, 녹슨 고철에까지 고마움을 느낀다는 그는 "영원히 죽지않는, 예술이란 이름을 탄생시키기 위해 손바닥이 갈라지고 피부가 벗겨지는 고통도 행복으로 승화시켰다"며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띄운다.

전시된 작품들의 면면들, 인고의 세월을 거쳐 불 속에서 탄생한 작품은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흔적이 역력해 오히려 유려하다.

철을 만들어 내는 용광로, 그릇을 구워내는 가마, 그 작품들을 보면서 불의 요변이라기엔 작품에서 풍기는 푸근함이 오히려 스님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11년이란 세월을 바쳐 개발한 천연유약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정갈함을 입힌다.

경북 칠곡에서 '흙내음 도예마을 토향암(土香菴)'을 운영하고 있는 스님에게는 '만능'이란 별명이 붙어있다. 체육, 미술, 문학, 음악(동요작곡), 안무, 인테리어, 조각을 비롯, 도공의 생애를 다룬 영화 '카루나'까지 만들정도로 모든 방면에 뛰어났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김해가 고향인 스님은 30살 늦깎이로 출가했다. 출가하지 않았으면 아마 영화감독이 됐을 것이라 한다. '설봉'이라는 법명에는 작품을 위해 재를 태우듯 몸을 태워 향기를 세상에 흩날리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고 한다.

불가와 연을 맺기 전, 그에게 번뜩이는 예술적 기질은 평범한 삶을 허락하지 않았다. 타고 난 기질을 오랜 세월 눌러왔지만 결국은 잠재된 혼이 도예가로서의 길을 택하게 했다고.

서울의 모 암자 주지시절인 어느 날, 서울 대방천을 지나다 오물로 뒤덮인 대방천에서 물장구치며 노는 땟국절은 아이들을 보고 스님은 그 아이들을 돌보기로 결심했다. 그냥 모른척하고 주지의 길을 가면 편했겠지만 마음 깊은 곳의 울림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스님은 이 후 판자집을 만들어 7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생활했는데 아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100명, 200명으로 늘어났고, 스님은 인테리어로 돈벌이에 나섰지만 주위 사람의 신고로 간첩으로 몰리기도 했다. 또 아이들을 데리고 관악산에 가서 등산객이 버리고 간 과자와 밥 등을 주워오라 했는데 동아일보 모 기자가 이 장면을 유심히 숨어서 보고 사진까지 찍었다고 한다. "아이들을 모아 앵벌이 시키는 것 아니냐"며 끝까지 숨어서 지켜봤지만 모아온 음식물을 떡갈나무 잎에 나누어 담아 새와 동물들이 먹을 수 있는 자리에 두는 것을 보고 신문에 게재하면서 스님은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 때의 아이들은 스님의 도움으로 고등학교를 마치고 스스로 노력해 지금은 사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어 뿌듯하다고 한다.

너나없이 어렵던 시절, 도자기 때문에 몰려드는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고 지금도 20명을 돌보지만 아이들이 모르게 도와주고 있다.

"가장 싫어하는 것이 고아원 등에 물품 전달하고 사진 찍는 것입니다."

인위적 분배에는 조직이 있고 상·하가 생기기 때문에 베푸는 것이 아니라는 스님은 "베푼다는 말 자체를 놓아버려라"고 한다.

도자기 때문에 아이들을 도와왔는데 지금도 도자기 매니아들이 찾아줘서 고맙기만 하다고 한다.

스님이 전시하고 있는 작품마다에는 시와 그림이 있다. 이는 아이들에게 연기, 웅변, 글짓기 등을 가르치다 보니 자연 시인이 되고 동화작가가 되고 화가가 됐기 때문이다. 스님은 내년 쯤 가장 아름답고 생각되는 글들을 모아 출판할 예정이다.

다시 도자기쪽으로 대화가 넘어가자 "객천에 떠도는 흙과 나무와 돌이 작품으로 태어나는 순간 그 작품들은 생명체로서 자신의 한부분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열 번 실패하면 열 한 번 일어서는 끈기와 집념으로 작업에 매달렸다"는 그는 단 몇차례 사용할 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두달이라는 시간과의 싸움이 필요했다고 한다.

나무 한 차를 태울 때 얻을 수 있는 재는 두말 정도.

여기에 물을 부어 불순물을 걸러내고 광목처럼 촘촘한 체로 다시 걸러서 고운 앙금을 앉힌다. 다음 과정은 물갈기.

하루에 두차례씩 100~120회나 반복해야 하는 일이다. 가히 60일 이상이 걸릴 법하다. 이렇게 해서 얻은 재를 볕에 바짝 말린다음 흙과 돌가루를 섞으면 비로소 유약으로 완성된다. 우리의 옛 옷감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운 색깔이 유약을 입고 백자라는 이름으로 새로 태어난다는 것이 설봉스님의 표현이다.

천연유약을 개발하기 이전에도 그의 작품은 미술계로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가마속 온도를 조절하면서 녹아내리는 유약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인데 역시 바탕이 되는 원리는 규격화 된 틀 깨기.

"작품을 만났을 때 잔잔한 감흥이나 혹은 울렁거리는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면 더 이상 작품이 아니라는 그의 작품은 외국 도예가들 사이에도 화제로 떠올라 일본 전시도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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