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숙수필가

“정말 죄송합니다. 모두가 제 실수예요. 마음 푸세요.”

평소답지 않은 공손한 저자세, 진심으로 노여운 마음을 풀어 주십사 빌고 또 빈다. 긴 통화를 듣고 있던 남편이 말한다.

“누가 알아준다고 그렇게 열심이야. 다음에 입장이 바뀌었을 때 누가 그렇게 해주겠어.”

“절대 아니지. 그때 역시 내가 사과해야지.”

“그래, 그럼 됐네.”

교정을 열심히 보았건만 놓친 부분이 있다. 그것도 한 둘이 본 것도 아닌데. 중요하다고 생각한 면이 다른데서 오는 사건이다. 가끔씩 생기는 이런 일에서 해결법은 하나밖에 없다. 시시비비를 따지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화난 사람의 화를 부채질하는 수가 많다. 그저 백배사죄하는 것이다. 누구의 잘못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맺힌 마음을 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윗세대에게 무조건적으로 잘못을 빌어 화를 풀게 하는 일은 앞으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 나 역시도 다음 세대에게 사소한 일에 대해 노여워할 것을 미리 걱정하는 남편의 마음을 잘 안다. 시대가 변하면서 기대를 버려야 하는 일들 중 하나다.

언제나 작은 일에서 문제가 일어난다. 감사와 보람으로 기억되는가 하면 원망과 서운함으로 남는 작은 일들, 그 작은 일들을 풀지 못하고 쌓다보면 매듭이 된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매듭은 소통의 걸림돌이 되기도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쉼표가 되기도 한다.

오래된 친구들과는 오랫동안 소식이 없어도 아무런 오해 없이 다시 이어진다. 그러나 확신 없는 인간관계, 아직 굳건해지지 못한 사람살이에서는 끊임없는 확인이 필요하다. 일정한 시간을 두고 안부를 묻는 배려가 필요하다. 그것이 즐겁지 않고 의무나 인사치레로 느껴질 때가 있다. 사람살이란 상대적인 것이어서 ‘그도 나 같다’고 전제하면 모든 의혹은 풀린다.

다음날, 수화기를 든다. 얼굴을 맞대기는 아직 어려우니까. 아니, 목소리가 더 정직하다고 했지. 얼른 수화기를 내려놓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억울함이 눈곱만큼도 배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전해야 한다. 오로지 그의 입장으로 돌아가 서운함과 노여움에 동조해야 한다. 충분히 반성하고, 거듭거듭 실수를 인정하고 모든 잘못을 백배사죄하여야 한다. 심호흡을 하고 다시 수화기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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