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욱 헌 <위덕대학교 공공행정학부 교수>

지난 주 별로 주목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우리나라 정책결정 과정에 귀감이 될 대비되는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지난 11일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가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을 받아들여 파업을 중지하고 자진 해산한 사건이다.

다른 하나는 지난 9일 사학법 개정안 표결과정에서 국회가 보여준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 사건이다.

후자는 우리나라가 과연 민주주의인지를 의심케 하는 눈살 찌푸리는 모습이었고, 전자는 민주주의 발전사에 획을 그을 결정이었다. 불법이든 합법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추진하는 행위가 보편화된 듯한 분위기속에서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가 취한 자진 파업해산은 법질서를 존중하는 획기적 조치이고, 반면에 국가의 최고 의사결정기관인 국회가 민주화 20년이 다되어가는데 아직도 비민주적 의사결정의 행태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출범후 폭력과 협박 등을 통한 정책결정은 권위주의 시대의 유물로 이를 과감히 청산하려는 의지를 표명하였을 때 이는 분명 진보적 조치로 보였다.

그러나, 사회단체에서든 국가기관에서든, 역설적이지만, 비민주적 의사결정 방법, 즉 상대의 인권과 재산을 무시하는 폭력과 위협적 행동을 통해 참여하는 방식이 진정한 참여이며, 이렇게 해야 영웅시되는 현상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으며, 나아가서 사회는 이를 용인하는 분위기이다.

많은 사람들이 20세기 후반이후를 국제화, 지방화 및 정보화라는 새로운 변화의 시기라고 진단하고 있는데, 이러한 비민주적 정책결정이 빈번한 것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아직도 정책결정 과정에서는 민주화를 실천하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 사회에서 최근 몇 년간 각종 데모 및 파업이 경찰과 물리적 충돌을 한 사건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타인의 인권과 재산을 침해하지는 않지만, 자학적 행동 또는 폭언으로 상대방을 위협하는 참여방법이 오히려 늘고 있다.

국가기구인 국회에서도 폭력과 협박이 정책결정과정에 동원되는 것이 결코 줄어든 것 같지 않다. 작년 대통령탄핵안 투표, 지난 11월 쌀협상안 결정 등은 이제 과거사가 될 줄 알았지만, 아직도 일부 국회의원은 논리적 설득력을 발휘하기 보다는 가두행진과 폭언을 서슴치 않고 있는 듯하다.

민주주의에서 참여는 권장되어야 할 덕목이다. 그러나 참여가 민주적이어야 한 단계 높은 민주사회로 진입할 수 있다.

정책결정 과정에 폭력과 위협 대신 상호존중의 평화적 갈등해결이 정착되어야 선진국으로 부르고 있다. 국회는 국가의 최고 의사결정기관으로 어떠한 사안에 있어서든 평화적 정책결정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 온 사회가 폭력과 폭언으로찢어진다 해도, 국회가 평화적으로 정책결정을 해야 우리 사회가 통합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국회는 우리 사회 정책결정의 얼굴이며 또 귀감이다. 법적으로 평화적 정책결정의 권한과 의무를 갖고 있는 국회가 폭력과 위협을 동원하여 결정할 경우 국회의 존재이유가 없다.

다음으로 국회가 한 건의 정책이라도 폭력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경우 다른 법률도 권위가 없어진다. 그리고 대화를 통한 의사결정은 결코 비용이 적게 들지는 않지만 물리적 힘을 사용한 정책결정은 이보다 훨씬 비용이 많이 든다.

우리 사회, 특히 국회가 정책결정을 평화적으로 추진하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 사회 구성원 개개인은 아무리 목적이 고귀하다 해도 정책결정 과정에서 갈등을 폭력과 협박을 통해 해결하려는 것을 엄격히 자제하는 새로운 전통을 세워야 한다.

합법적 파업이나 시위의 범위를 넘어서 자행되는 불법적 행위와 남의 인권이나 재산을 위협하고 파괴할 때는 엄격하게 용남하지도 않아야 한다.

타인의 인권과 재산권을 존종하지 않는 파업이나 데모가 더 이상 영웅시 하지도 말아야 된다. 대신, 사회 구성원은 전문가를 동원하여 철저한 설득논리를 준비하고 이를 통해 정책결정에 참여하는 것을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

둘째 정부는 폭력과 위협을 통한 정책결정 참여를 현행의 인권이나 재산권 보호법으로 보다 엄격히 다스려야 한다. 타인의 인권과 재산이 존중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가 설 자리는 없다. 엄격한 법적용으로 법질서를 확립한 예는 싱가포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국가의 최고결정기관인 국회가 정책결정과정에서 물리적 힘을 사용할 경우,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당사자는 더 이상 국회의원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자격을 제한하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 국회가 폭력과 위협을 사용하는 정책결정을 하는 한 우리 사회 구성원에게 평화적인 방법에만 의존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넷째, 정책결정에서 패배한 집단에도 지속적으로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출구를 보장해야 한다. 막다른 골목에 처할 경우 누구나 극단적인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부당하게 박탈될 수 있는 인권과 재산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민주화이후 우리나라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의 목소리가 획기적으로 증가한 것은 환영할만하다. 그러나, 참여가 민주적이지 못하는 한, 반쪽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소수와 다수가 다같이 상대의 인권과 재산권을 존중하는, 폭력과 위협대신 평화적 방법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방안이 강구되어야 우리 사회가 온전한 민주주의로 나갈 수 있다. 이제 정책결정 과정도 민주화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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