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열 한동대 교수

교육은 백년대계라 한다. 과연 우리는 백년을 내다보는 교육을 하고 있는지 되묻고싶다. 영주와 안동에서 각각 학교폭력과 학업 스트레스로 또래 중학생이 잇따라 목숨을 끊었다. 이는 우리의 교육이 무너졌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지경인데도 우리는 학생 본인의 의지 없음과 개인적 용기 결여로만 그 까닭을 몰고 갈 것 인가. 이제는 우리 교육시스템의 총체적 실패를 인정하고 그 뿌리부터 새롭게 세워갈 진정한 용기와 결연한 의지가 우리 교육계와 사회 지도층에 없는지 묻고 싶다.

먼저, 대학입시. 이 세상 천지에 대학입시가 전국민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그에 따라 전국의 여론마저 휘둘리는 나라가 또 그리 흔할 것인가. 머지않은 장래에 고교졸업생 총수가 대학입학정원보다 적어지는 추세에 놓여있다는데 우리의 대학입시 현실은 어째서 아직도 나아질 조짐을 보이지 않는 것인가.

대학도 이제는 '선발'보다는 실질적인 '교육'에 보다 마음을 쓰고자 하는 변화를 겪고 있다. 입학사정관제를 비롯한 제도의 변화도 이미 시행되고 있다. 이제는 보다 본격적으로 대학 간의 서열을 어떻게 없앨 것인지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할 것이다. 대학의 이름만으로 학교의 순위가 매겨지는 모든 논의와 제도, 평가방법 등을 과감하게 철폐하여야 할 것이다. 다음세대를 위한 '교육'을 위하여 꼭 필요하다면, 학교의 이름마저도 과감하게 양보할 용기가 없는지 대학들에게 묻고 싶다.

대학입시의 그늘에 신음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학교교육이다. 중고등학생들의 오늘 삶을 들여다보면, 학교를 다닌다기 보다 억지로 끌려 다니는 꼴을 하고 있다. 최근 '학교폭력'을 위해 여러 대책들이 발표되었지만, 이들 역시 교육의 모든 기준을 '대학입시'에 두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을 뿐이다.

학교는 즐겁게 배우는 곳이어야 한다. 생각을 붙들고 신나게 겨룰 수 있는 곳이 학교가 되어야 한다. 살아있는 가르침을 위하여 활기차게 준비하는 선생님들이 넘치는 교육의 현장이 학교여야 하고, 매일 배워도 싱싱한 새로움을 경험하는 학생들에게 기쁨이 넘치는 곳이 학교여야 할 것이다. '학교가 배움으로 즐거운 곳'이 되면 학교 폭력은 사라질 것이다. 공연히 남의 나라로까지 배우러 떠나는 슬픈 '조기유학'도 사라질 것이다. 학교 가기가 끔찍하여 목숨을 끊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알고도 당하는 사교육의 부작용도 없어질 것이다. 교육을 맡은 선생님들을 더욱 신뢰하고 격려하여 즐거운 교실이 돌아오게 하자.

우리 교육이 오늘처럼 되어 온 데에는 교육정책도 한 몫 책임이 있을 것이다. 이제는 '교육'에 관하여 '뿌리'로부터 새롭게 하겠다는 다짐을 했으면 한다. 즐거운 학교가 돌아오는 일에 교육에 관련된 모든 이들이 마음을 합하기를 바란다. 중등교육의 기준을 '대학입시'가 아닌 '다음세대를 위한 교육'에 맞추면 못 이룰 바도 아닐 것이다.

우리의 교육이 무너졌음을 모르는 이가 없으면서 이에 대해 단기적이고 대증적 대안만 끊임없이 남발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이제는 반성해야 한다. 우리의 자녀들은 바로 '나'의 자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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