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영 환 <경북통상 고문>

싱가포르는 독립한지 반세기가 채 안돼 작은 것이 강하고 아름답다는 통설을 입증한 아시아의 도시국가가 됐다.

사람이나 국가나 상징하는 이름이 중요한가, 말레이 반도 최남단 교통의 요지 싱가포르는 말레이어로 “사자”라는 의미인데, 아시아의 한 마리 작은 사자로서의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연간 싱가포르 공항을 이용하는 승객수는 우리의 인천공항보다 무려 600여만명이 더 많은 3천만명을 넘어섰고, 동남아국가연합(ASEAN) 10개 회원국을 비롯한 남아시아의 물류공급기지로서의 한 축을 형성했다. 남아시아의 물류 및 금융의 중심축, 말하자면 허브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1인당 국민소득 2만2천달러, 연간 수출 2천500억달러 그리고 전자와 화학산업의 첨단화를 이룩함으로써 1970년대 세계경제현장에서 한국, 대만 및 홍콩과 더불어 4마리의 용으로 주목을 받던 나라가 이제 선두로 나섰다. 1965년 8월 말레이지아 연방에서 탈퇴, 독립을 선언한지 40년 밖에 안된 세계에서 가장 젊은 나라중 하나이다.

서울보다 약간 넓은 685㎢면적에 인구 420여만명이 만들어내는 작은 거인의 경제규모이다.

인구분포는 중국계 76%, 말레이계 14%, 인도계 8% 그리고 기타 인종 1-2%로 돼 있어 중국계가 나라를 이끌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작은 도시국가인데도 말레이촌과 인도촌의 문화와 종교가 원형대로 보존되는 다인종국가의 면모를 갖고있다.

싱가포르에서 인도와 말레이 음식을 들거나 그들의 고유의상을 입는다든지 힌두교 혹은 이슬람 종교의식에 참여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놀라운 것은 독립후 지금까지 다소 생활수준이 떨어져 뵈는 인도와 말레이촌에서 폭동이나 소요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미국화된 도시에서 다인종이 섞여사는데 소수인종의 불평과 소요가 없었다는 것은 그만큼 차별이 없는 사회라는 반증인 듯 싶다. 사회의 투명성과 기회균등은 싱가포르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임에 틀림없다. 연줄이 통하지 않는 사회, 부패가 없는 사회, 오로지 개인의 능력으로 사회신분이 결판나는 사회는 오늘날 지구상에 흔치 않다. 싱가포르는 세계화의 혜택을 가장 톡톡히 누리고 있는 나라이다.

아세안의 지역경제통합과 경제주권이 무너지는 무한경쟁의 세계시장 환경에서 작은 사자로서의 경쟁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어 21세기중에도 싱가포르의 장래는 밝은 것으로 내다보지 않을 수 없다.

국내 많은 중소업체들이 아세안시장에 진출하는데 싱가포르 바이어들을 활용한다.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혹은 태국에 물건을 직접 팔기보다는 싱가포르 바이어를 통하는 것이 안정성과 수주물량이 담보되기 때문에 그렇다. 최근에 싱가포르 국민인 인도상인들이 인도본토와 방글라데쉬 및 스리랑카에까지 우리의 물품의 공급망을 넓히고 있다.

싱가포르 중국인들은 우리와 같은 동북아의 문명권을 건설한 주역임에도 불구하고 질서의식과 규율면에서 가장 서구화돼 있다. 질서와 규율은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국민의 중추신경이 되는 것 같다.

항만에서의 단 6시간만의 통관완료와 아세안지역 24시간내 상품인도는 고도의 사회간접자본 개발과 질서 및 규율이 작동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질서와 규율은 자본주의의 적자생존의 근본인 효율성을 극대화해 준다. 국민 대다수가 신정(新正)보다는 구정(舊正)을 쇠고 불교를 신봉하는 등 아시아적 전통문화 의식속에서 서구의 경제의식을 접목시켰다는 것은 경이롭기만 하다.

연간 한 두차례씩 물품 구매상담을 위해 방한하는 한 중국계 싱가포르 바이어는 서울에서든 대구에서든 거리 교통의 무질서와 교통위반을 단속하는 경찰관에게 대드는 운전자들의 모습을 보고는 “소름이 끼친다”고 혀를 찼다. 싱가포르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광경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무질서하고 규율이 무시되는 나라가 이렇게 경쟁력있는 산업을 일구고 있다는 것은 불가해한 일”이라고 풍자섞인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대만 사람도 그렇지만, 싱가포르인들도 한국의 설경을 보고싶어 한다.

중요한 바이어의 경우 아름다운 눈덮힌 산야의 조촐한 별장에 초대하여 우의를 다지는 것도 거래를 늘려갈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아세안이 유럽연합(EU)처럼 경제통합의 심도를 더해가면 싱가포르 정부나 민간인들이 인근 말레이지아 산야를 구입해 영토에 편입시킬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날을 위해서라도 싱가포르인들은 더욱 더 열심히 일해 국부를 축적해 갈 것으로 보인다.

사회의 투명성과 기회균등의 제도 그리고 질서와 규율을 존중하는 싱가포르인들의 정신적 자산이 오늘날과 같이 싱가포르를 부강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 우리는 유의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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