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영 환 <경북통상 사장>

생존경쟁에서의 패자는 퇴영되거나 끝내는 멸망하고 만다. 동물의 세계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것이지만, 인간사회도 그렇다.

역사는 승자들의 무용담이요 서사시인 것이다. 개인이든 도시든 국가든 대결과 경쟁에서 패한 자들은 쇠잔되거나 끝내는 소멸하고 만다.

자연과의 대결에서 폼페이는 화산폭발의 잔해에 묻혔고, 스파르타군의 목마 술책에 속아 패망한 트로이는 전설의 도시가 됐으며, 중세 북유럽의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시대 맹주였던 뤼벡은 이웃 도시와의 경쟁에서 밀려 중소도시로 전락했다.

종교개혁시대 루터 성도(聖都)로서 무대에 등장했던 아이스레벤(Eisleben)은 종교도시로 일어서지 못했다.

우리 조선시대 전주(全州)가 한양과 평양에 이어 세 번째 도시였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그러나 예외적인 경우도 없지 않다. 남프랑스의 론강 상류 아름다운 중세도시 아비뇽(Avignon)이 바로 그런 도시이다.

로마 초기에 건설된 아비뇽은 중세시대 상업의 발달로 번성하여 정치와 종교의 한 축이 됐다.

1305년 남프랑스 보르도지방 주교가 클레망스 5세로 교황에 취임하자 로마 교황청으로 가지 않고 아비뇽에 체류했다.

이후 70여년동안 로마쪽에서 보면, “교황의 아비뇽 유수(幽囚)”라는, 교황이 로마 교황청에 있지 않고 아비뇽에 갇혀있는 꼴이 됐다.

7명의 교황이 권좌를 계승하면서 아비뇽은 실제적인 교황청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다가 1378년 카토릭은 교회의 대분열(Great Schism)을 맞게 된다.

로마와 아비뇽에 교황이 각각 임명돼 두명의 교황이 있게 된 것이다.

정치적으로 프랑스와 스코틀랜드는 아비뇽 교황청을 지지했고, 영국과 독일은 친로마파의 입장에 섰다.

아비뇽 교황청으로 통일되었더라면 영국의 운명이 어떻게 됐을까.

그러나 1414년 독일의 스위스와의 국경 호반도시 콘스탄즈 종교회의(Council of Constanz)에서 교황청은 로마로 판가름났다.

카토릭은 분열의 위기를 극복하고 종교개혁에 나설 수 있었다.

지금도 아비뇽 암석위의 고딕식 교황청은 당시의 위엄을 보이고 있으나, 성채이며 궁전인 이 교황청의 유령들은 론강을 굽어보다가 물속으로 침잠(沈潛)하여 과거의 영욕을 되씹으며 신음하는 것 같다. 그것은 강의 물결소리였으나, 그러나 내겐 유령들의 신음소리로 들렸다.

교황 유치전에서 패한 아비뇽은 정치적 힘을 잃고 표류했다.

소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역과의 교역으로 번성하기 시작한 마르세이유와 바르셀로나에게 상권도 빼앗겼다.

곡물과 포도주의 유통 장악력도 갈수록 쇠퇴해졌다.

15세기 아비뇽을 떠나는 상인과 시민들이 줄을 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스페인 바로셀로나의 아비뇽동네는 아비뇽 사람들의 이주가 많아 생겨난 이름인지 여부는 모르겠으나, 피카소의 “아비뇽의 아가씨들”의 그림이 유명해져 아비뇽도시와 바로셀로나의 아비뇽 동네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패자의 도시 아비뇽은 유령의 도시로 전락하지는 않았다. 카토릭 개혁에 몸을 던진 성자들의 출현이 시민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신앙심의 회복은 시민들에게 절망 대신 희망의 영감을 준 것이다. 강렬한 태양볕 아래서 그들은 낙천적인 공상가들이 되었다. 낙천가들인 그들은 계절에 따라 화려한 의상을 입고 광장에서 춤추었다. 춤과 연극과 미술의 부흥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다양한 색채가 돋보이는 눈부신 아비뇽의 여인들의 의상에 춤과 미술과 연극이 배어있다.

아비뇽은 예술의 도시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댄싱, 미술 및 연극은 아비뇽의 대표적 상품이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빼어난 연극축제인 “아비뇽 페스티발”이 한달동안 계속되는데, 연극과 어우러진 미술과 댄싱등 문화행사 또한 다양하다.

마르티니를 이어 고전적 아비뇽화파를 형성한 화가들뿐 아니라 브라크와 피카소처럼 근대의 미술거장 중 아비뇽에서 한 시기 기거하며 작업한 작가들이 적지않다.

문화산업의 번성과 관광객의 증가는 아비뇽의 도시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 남프랑스지역을 대표하는 고속철 TGV역이 들어섰다.

TGV역은 왕래하는 사람들의 폭주를 유발하여 해가 갈수록 아비뇽을 중세와 현대의 공존도시로 만들고 있다.

TGV역내 벤치에는 누워 열차를 기다리는 여행객들이 많다.

구내 카페는 새벽 4시에 문을 열어 이튿날 새벽 1시에 문을 닫는다. 문 닫는 시간은 고작 3시간뿐인데, 실내를 청소하고 정돈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북적대는 손님들을 배려한 시간배정인 것 같다. 파리로 가는 고속철을 기다리며 벤치에 앉아있던 나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곁에 누워있는 한 청년에게 “아비뇽 관광이 인상적이었는지”를 물었다.

그는 일어나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는 슬픔과 좌절을 느낄 때 아비뇽에 와서 패자의 미학을 보고자 한다”고 대답했다.

패자의 미학이 무엇인지를 묻자, 그는 “슬픔과 좌절을 이기는 생명력의 힘”이라고 설명했다.

생명력의 힘에 관해 다시 묻고 싶었으나, 그 의미가 알송달송하기는 마찬가지일 듯 싶어 그만두고 그에게 웃음을 지었다.

패자라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발휘한다면 부활할 수도 있다는 의미인가.

아비뇽이 21세기 문화산업의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시대에서 문화의 힘으로 다시 옛 영화를 되찾을 것 같이 느껴지는 것은 내가 아비뇽을 좋아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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