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현 부사장

돈 봉투 수사 불똥이 어디로 튈지 경주시와 시의회가 좌불안석이다. 경찰에 줄줄이 의원들이 소환 된 시의회는 벌집 쑤신 듯 요란하다. 더욱 가관인 것은 상당수 시의원들이 뇌물과 선물을 구분하지 못하는데 있다.

원인제공은 집행부이지만 지방의원들의 책임이 크다. 그들은 해마다 시민들로부터 비난받아가며 관광성 해외연수를 떠났다. 그들은 여행 경비 일부를 집행부로부터 받아 오면서 관례에 따라 받은 것일 뿐 뇌물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경주시의회는 2010년7월부터 2012년6월말 사이 2년간 10여 명씩 나눠 태국과 유럽 등지로 네 차례나 해외 연수를 다녀왔다. 이들은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시장과 경주시의회 의장으로부터 수백만 원씩 여비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시의회 후반기 의장단 선거로 패가 갈린 경주시의회 꼴이 말이 아니다. 돈 봉투가 관행이라고 해도 돈을 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 공직자이기에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영국의 기업윤리연구소(IBE)가 재미있게 정의한 선물과 뇌물의 3가지 차이점만은 이번 기회에 공직자들이 알고 넘어갔으면 한다.

IBE 가라사대 첫째 '물건을 받고 잠을 잘 못 이루면 뇌물, 잘 자면 선물'. 둘째 '언론에 발표되면 문제가 되는 것은 뇌물, 문제가 안 되는 것은 선물'. 셋째 '자리를 바꾸면 못 받는 것은 뇌물, 바꾸어도 받을 수 있는 것은 선물'이다. 뉴스를 보다보면 공직사회 비리에 국민들은 허탈감을 넘어 분노를 느낄 때가 많다. 정당은 공천헌금, 공무원은 뇌물수수, 향응 접대 비리가 판을 친다. 저축은행 PF 부실로 비롯된 금감원 임직원들의 비리를 보면서'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겼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황희 정승과 고불맹사성, 이황은 조선의 대표적 청백리다. 퇴계 이황이 어떤 관리가 고기와 필묵을 선물로 가져오자 필묵은 받고 고기는 돌려보냈다. 이황은 모두 거절하면 그 사람과 절교를 뜻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받았다는 일화가 있다.

선물과 뇌물의 경계가 자로 줄을 긋듯이 명백하다면 그것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양쪽 모두 불편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것이 선물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주고받으면 되고, 뇌물일 경우에는 정중하게 거절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사에서, 특히 인지상정(人之常情)을 미덕으로 여기는 한국사회에서는 선물과 뇌물의 경계가 매우 모호하다.

형법에 따르면 뇌물죄는 일반인이 아닌 공무원이나 중재인에게만 적용되는 신분범죄이다. 뇌물죄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법리적으로 다소 까다로운 조건이 수반된다. 선물과 뇌물의 한계에 대해선 동서고금에도 많은 논쟁이 있었다.

역사인류학자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는 선물의 역사라는 방대한 역저에서 중세 서구사회의 선물에 얽힌 예화를 흥미롭게 소개 하고 있다. 데이비스는 선물이란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장치라고도 표현했다.

어쨌든 곪아 터진 공직사회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경주시의회가 시민 위에 군림해 왔다면 이제는 시민의 진정한 심부름꾼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 해야 한다. 대 시민 사과문 발표와 석고대죄만이 분노한 시민들의 마음을 달랠 수 있다고 본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