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숙수필가

헐벗은 발이 시리고, 상처 난 몸뚱이가 쓰리다.

주는 일 밖에 모르는 그는 스스로 몸을 챙기지 못한다. 산을 오르내릴 때 무심히 따라온 흙부스러기, 낙엽 몇 잎이 제 자리를 잃고 흐느낀다.

그는 우리가 어릴 때는 놀이터가 되어주었고 자라서는 삶터로, 휴식이 필요한 시간엔 쉼터로 아낌없이 주기만 했다. 푸르른 공기와 갖가지 꽃과 열매, 선한 물과 바람을 품어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을 돕는다.

산들은 저마다 너른 품으로 늘 그 자리에 그렇게 서있다.

우리는 어렵던 시절 산에서 먹을 것과 땔감을 무차별로 취했다. 자연훼손이라는 개념조차 모르던 시간이 너무 길었다. 언제나 경제가 우선이며, 정신은 허덕이며 뒤를 겨우 좇고 있다. 나란히 가야할 짝이 균형을 잃은 지 오래다. 자연의 신음소리 깊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산이 우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다.

봉화군에 있는 청량산은 운무에 쌓인 낙동강 원류를 따라서 들어가는 길부터 예사롭지 않다. 이곳에는 청량산을 속속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개발이란 명분으로 잘려나간 산허리를 함께 아파하고, 사람들의 발길에 의해 헤쳐지는 살비듬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다.

산에게 받은 많은 것들을 이제는 돌려줘야 하는 때가 되었음을 알린다. 쓸려나간 흙으로 인해 뿌리가 드러나 이미 죽었거나 성장을 멈춘 많은 나무들을 보며 더는 늦출 수 없는 일을 시작한다.

2006년 첫 날부터 청량산 도립공원관리사무소에서는 ‘청량산愛 흙주기운동’을 펼친다. 선바위 입구에 안내판과 함께 흙과 흙을 담을 수 있는 봉투를 비치해서 산행하는 사람들이 자기 힘에 맞게 봉투에 흙을 담아 나무의 뿌리가 드러난 곳에 부을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헐벗은 나무의 발에 흙을 덮어주면서 따뜻해질 마음을 생각하면 스스르 웃음이 지어진다.

일이 의무면 세상이 지옥이고 일이 즐거우면 세상이 천국이라는 말을 빌리지 않아도 이곳 청량산을 지키는 사람들의 일은 의무가 아닌 사랑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산의 소리를 듣고 표정을 읽으며 함께 호흡하는 그들의 자세를 보며 잃고, 잊고 무심히 지나온 것들을 돌아본다.

한 사람의 한 줌의 흙이 모이고 모여 튼실한 산을 만들때까지 이 운동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하여 산이 환하게 웃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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