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성 규 <한동대학교 교수>

한 해가 또 간다. 그리고 새해는 어김 없이 올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 사실이 오십 고개를 넘긴 후부터는 해가 바뀌는 세모의 문턱에서 왜 이토록 숙연해지는지 모르겠다.

마치 인간은 죽음 앞에 진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따지고 보면, 해가 바뀐다는 것은 태초이래로 끊임 없이 흘러 온 시간을 우리의 편리대로 구분해 놓았을 뿐이다.

하지만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면서,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되는 것 같다. 세모의 계절에 대한 의미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지난 해를 돌아보아 반성하고 각오를 새롭게 하는 소중한 절기로 여기는 것 같다.

달력의 마지막 장에 그 해 마지막임을 일깨워주는 자극이 없다면, 과연 바쁜 일상 속에 지난 날들을 되돌아보려는 겸손함이 생겨날 수 있을까 싶다.

‘시간은 가는 것과 동시에 오는 것’이다 라고 말한 어느 글귀가 생각난다.

당시에는 알 듯 모를 듯 했는데, 이젠 그 뜻을 조금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우주적 시간은 영원한 것일지라도 생명 있는 인생들에게는 한정된 시간을 살고 있다 는 뭐 그런 의미인 듯 하다.

머리로야 알겠지만, 가슴으로 느껴지기까지는 적지 않은 세월을 지나 보냈어야만 하는 그런 지혜의 말인 것 같다.

돌이켜 보니, 나라 안팎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한 과학자의 문제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핵심은 진실과 윤리의 문제인 것 같다. 진실과 윤리의 문제가 그 자체로서 이처럼 극명하게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그의 연구에 대한 윤리성 문제를 논하는 글을 두어 차례 쓴 적은 있었지만, 연구자체에 대해서는 의심해본 적은 없었던 터라 최근의 상황이 많이 당황스럽다.

과학계는 연구결과의 진위가 자연적으로 판명될 수 밖에 없는 검증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과학연구는 일반적으로 기존의 연구결과를 기초로 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기초로 삼았던 전(前)연구가 검증될 수 밖에 없다. 중요한 연구결과일수록 이런 검증절차는 더욱 철저하다.

왜냐하면 더 많은 과학자들이 더 오랜 기간 동안 그 연구결과를 기초로 자신들의 연구를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평생을 연구자로 살아온 문제의 그 과학자가 이런 시스템을 통해 자신의 조작된 연구결과가 드러나리라는 것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을 저질렀던 배경에 대하여 이런 저런 해석들이 난무하다.

이번의 사건을 한 개인의 진실성과 윤리성의 문제로만 귀결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이번에 드러난 진실성과 윤리성 문제는 한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총체적 차원의 문제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사자는 물론, 과학계, 정부, 언론 등 사회구성요소 전반에 각각 일정부분씩 책임이 있다.

우선은 서울대 측의 진상조사 그리고 과학계와 국가차원의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문제의 본질과 발단과정이 투명하게 드러나야 할 것이다.

그리고 책임소재에 따른 응분의 처분을 받아야 할 것이며,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보완하고 신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사건을 계기로 진실성과 윤리성 회복을 위한 국민적 각성운동으로까지 발전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번 사건은 본질상 고도의 진실성과 윤리성이 요구되는 과학계의 사건이었기 때문에, 그 장본인의 문제점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날 수 있었다.

이는 분명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번 일로 인해 국가적으로 진실과 윤리의 중요성에 대해 실감할 수 있었던 좋은 교육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이제는 우리의 진실성과 윤리성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영역은 물론, 사회구성원들의 일상적 삶의 구체적인 부분까지 넓혀가야 할 것이다.

진실성과 윤리성을 근간으로 하지 않는 사회는 결코 일등국가가 될 수 없다.

이는 이 시대 우리 국가에게 던져진 분명한 도전임에 틀림이 없다.

이번 사건을 통한 또 하나의 교훈은 ‘빨리 빨리’가 아니라 ‘차곡 차곡’ 사는 삶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모든 일에는 절차와 과정이 있다. 이 절차와 과정에 진심을 다해 성실하지 않는다면, 생겨난 결과는 언젠가 반드시 탈이 나게 되어 있다.

적은 수의 사람을 일순간 속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을 긴 세월 동안 속일 수는 절대로 없기 때문이다.

이 만고의 진리를 너무나 잘 알면서도, 일이 터진 후에야 땅을 치고 후회하는 우매함이 어쩌면 우리 인생들의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 우매함을 반성하고 그리 하지 않기로 새롭게 결단하는 지혜로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지난 일을 반성하고 새롭게 결단한다면 또 한 해를 보내는 길목에서 그 의미가 더 할 것 같다. 내 한계와 나를 돌아보고 그릇되지 않도록 더욱 살펴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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