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삼 우 <기청산식물원 원장>

어느 날 이른 아침 막 잠에서 깨어난 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손자가 느닷없이 한마디 해온다.

“할아버지, 이름에 ‘ㄴ’자 든 사람이 큰 인물 되는 것 같아요. 이순신, 김유신, 박태준, 유관순, 안중근, 왕건…”

“됐다. 그만 줏어섬겨라.”

듣고 보니 그를듯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포스텍이라는 이름이 목에 걸린 고등어 가시같이 느껴지기에 시론을 쓴 적이 있다.

제발 포스텍이라는 이름은 국외용으로 하고 국내에서는, 특히 포항시민들의 긍지를 위해서는 포항 지역 언론에서만이라도 구숨하게 포항공대라고 계속 불러주기를 간청하는 글이었던 기억이다.

인도의 귀족들은 대게 귀가 크다.

유전적으로 커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잡아당겨 늘려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귀하게 되려면 귀가 커야한다는 풍습이다, 말을 하기 보다 듣기를 많이 해야 귀하게 된다는 동양식 철학을 실천하고 있음이다. 부처상들이 귀가 큰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이다. 뒤집어 말한다면 언어며 음악이 갖는 소리 그 자체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극히 중요하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최근 포항시가 도로명을 새로이 재정비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참으로 유익하고 시대적으로도 적합한 사업의 하나라 여겨진다.

일전의 소식에 의하면 안동에서는 이황선생이 청량산을 오가며 곧잘 산책을 하던 도산면 단천리에서 가송리에 이르는 3km에 ‘퇴계 오솔길’을 준공하여 관광객들에게 공개했다고 한다. 길 이름을 ‘가던 길’이라는 뜻의 우리 옛말 ‘예던 길’로 지었다고 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퇴계 오솔길’로 익히 통용될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일들이 은연중에 시민이며 국민의 정서를 멋스럽게 가꾸어주는 청량제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매력적이거나 낭만적인 작명으로서 관광 자원으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할 수 있어 그 효용가치가 비록 음성적이겠지만 지대할 가능성을 비치고 있음이다.

지명은 그 땅의 특성을 살려 짓는 것이 첫째요, 둘째는 그 지역의 미래지향적인 목적으로 창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더 세분하자면 과거 역사성에 의존하는 방법, 현재의 특성을 반영하는 방법, 미래의 희망을 반영하는 방법 등을 들 수 있겠다. 역사성에는 옛지명을 인용하는 방법과 포은 정몽주며 배천희국사 같은 옛 거물급 인물들의 고향임을 부각시키는 의미로 대입시키는 방법이 있을 테고, 현재를 따져서는 형산강이며 포철이며 문예회관, 종합 대운동장, 환호공원, 각종의 대학 같은 굵직한 현물을 감안 인용하여 작명하는 것일 게다. 학교가 밀집된 지역은 학생들의 교육장학에 걸맞는 이름을 지어주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영신, 중앙, 대동, 유성 등의 고등학교가 밀집된 지역을 勉學路(면학로)라던가, 더 특색을 구현하고 싶다면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學而時習之 不亦說乎-배우고 때로 익히니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라는 논어 속의 명문을 인용하여 學而時習之路(학이시습지로)라고, 혹은 궂이 줄여야 한다면 學習路(학습로)로 이름하여 근학이념을 부각시키는 것도 바람직한 작명이라 여겨진다.

어쨌거나 세상사 모든 고유명사의 소리는 뜻을 풍기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소리 그 자체의 위력은 대단 한 것이다. 인체는 귀로 들려오는 소리의 유형에 따라 몸 속에 분비되는 호르몬의 종류와 양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래서 소음이 심한 곳에 살면 지병을 얻기도 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좋은 뜻 글자를 상시로 듣고 보게 되면 그로 인하여 건강이며 정신상태가 상향된다는 것이다.

상징화목이 중요하듯이 거리의 이름이며 학교의 이름이 듣기에 어떠하냐 하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 했다. 혐오스러운 연상반응이 있거나 컥컥 막히는 고유명사는 그 자체가 유감주술을 일으켜 생기를 틀어막고 마침내 쇠락하는 경우도 흔히 있는 것임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식 이름 하나 짓는데 10만원 20만 원을 작명전문가에게 쾌척하는 것일 거다.

모처럼의 改名(개명) 기회가 포항의 미래에 유익한 영향을 끼쳤으면 하는 바램으로 작명론을 꺼내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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