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재 숙 <위덕대 총장>

며칠전 한 식당에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적당한 양의 고기를 불판에 올리고 한점씩, 천천히 많은 채소를 곁들여 먹고 또 욕심내지 않고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불판에 고기를 잔득 올리고 한꺼번에 다 구워, 먹기에 다급해했던 지난날 모습들은 어느새 사라진 것 같았다.

멀지 않았던 과거 그때 그 모습은 먹거리가 부족했던 탓이라 생각하니 쓴웃음이 났다.

6,70년대에 유행하던 우량아 선발대회나 당시 잘생긴 사람의 모습은 대부분 충분한 영양섭취를 바탕으로 하얀피부에 살집이 적당히 많은 그런 모습이었던 것 같다. 먹던 밥을 숟가락에 가득 담아 남의 밥그릇에 올리던, 배불리 먹이는 것이 예의와 정성이라 생각했던 그 시절, 그래도 가끔씩 정(情)이 넘치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요즘엔 날씬함과 건강유지를 위한 절식과 영양식이 최대의 식문화 과제가 되었지만 이러한 호사를 누리는 배경엔 충분한 먹거리가 보장되는 물질적 여유가 있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세계가 놀란 엄청난 속도의 우리의 경제성장은 사회구성원의 생각과 행동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고 기성세대는 동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만큼 생각과 태도의 변화가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사회 많은 구성원은 아직도 절대빈곤과 차상위 계층에 속해있어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다.

새해엔 이들에 대한 배려와, 함께하는 성숙한 문화가 우리사회에 보다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먹거리엔 ‘숙성’이 필요하듯 우리사회 전반에는 ‘성숙’이 더없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여유와 인내는 우리네 삶에 꼭 필요한 지혜가 아닌가 한다.

고기는 조직이 굳어졌다(사후강직) 풀리면서 훨씬 연하고 맛있게 된다.

그래서 식당에선 저마다의 노하우로 숙성의 기법을 다양하게 갖고 있다. 그리고 고기는 적당히 구워야 육즙이 빠지지 않고 그대로 있어 고기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된다.

싱싱한 고기보다 적당히 숙성된 고기가, 급하게 구운고기 보다 적당히 알맞게 구운 고기가 감칠맛이 더해 우리네 입맛에 더 좋게 된다.

이젠 많은 양의 고기를 급하게 구워먹는 식습관을 찾기 어려운 것처럼 우리사회도 이젠 기다림의 여유와 남을 배려하는 성숙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방의 생각을 급하게 주입시키려 한다면 반감과 불신은 더욱 커져 원래 추구하던 좋은 의도도 희석되게 마련이다.

사후강직이 풀리는 시간의 여유가 필요한 때가 되었다. 물론 너무 긴 시간의 여유는 고기를 부패시키기도 하지만 일정한 시간의 여유야말로 우리사회를 부드럽고 편안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의할 것은 도외시하거나 소외시키는 것은 바로 사회부패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가족관계를 비롯한 사회 모든 관계의 건강성은 상대에 대한 배려와 꾸준한 관심 그리고 기다려주는 여유라는 것이다.

텔레비전 송년방송에서 나이든 가수의 노래하는 모습을 보았다. 세월은 속일 수 없는 듯 늙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예전과 다른 창법으로 부르는 노래는 젊은시절 그의 노래와는 다른 성숙함이 느껴져 참 좋았다.

바람직한 성숙이란 시간을 피해가며 과거 젊은 모습을 집착하는 것을 넘어 긍정적인 시간인식속에 흰머리와 주름살을 당당하게 여기고 그러면서 지난 세월동안 쌓은 경험의 지혜를 의욕 가득한 젊은이들에게 전해주는 것이란 생각을 한다.

병술년 새해엔 국가와 지역사회에 더 없이 좋은 일들만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사회정책의 결정은 결과와 함께 과정 즉 절차적 민주주의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인식하는 위정자와 국민이 될 것을, 모두가 상대를 인정하고 또 배려하는 따뜻함과 성숙함이 충만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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