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아, 춘아, 옥단춘아,…’(민음사 펴냄)

당대를 주도하는 문필가 등 유명인들과 평범하지만 그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 철학을 지닌 보통 사람 26명이 흉금을 터놓고 대화를 나눴다.
계간 ‘세계의 문학’이 올 여름 100호 기념으로 출간한‘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민음사 펴냄)는 13쌍의 대담자들이 펼쳐놓는 세상 이야기를 녹취해서 담은 보기 드문 형식의 책이다.
‘우리 시대의 삶과 꿈에 대한 13가지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의 대담자들로 김우창, 김춘수, 김화영, 이문열, 최인호 등 문학가들과 생물학자 최재천, 음악학자 이강숙, 신화연구자 이윤기, 정치학자 최장집, 아줌마 페미니스트 이숙경, 휠라 코리아 대표 윤윤수, 헌책방 주인 노동환, 실상사 도법 스님, 양명수 목사 등으로 저마다 독특한 어조로 펼쳐보이는 철학이 다채롭다.
소설가이자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윤기(54)씨의 대담 파트너는 유학 준비중인 대학생 딸 이다희(21).
‘제가 술 잘 마시는 것도 유전인가요?’ 같은 딸의 사사로운 질문이 시베리아계 무당들은 북을 두드림으로써 망아(忘我)에 이르듯 ‘나는 술을 마시고 소설을 구상한다’는 아버지의 대답으로 이어진다.
평론가 김화영(59)씨와 짝을 이룬 소설가 이문열(53)씨는 자신이 싫어하는 질문을 예를 들어 설명하면서 “오십 넘은 놈한테 아직도 영향을 주는 작가를 대라니, 나 참”하며 어이없어한다.
이 책의 편집자들은 이같은 화자들의 진솔한 대화를 그대로 실어 소설보다 더 쉽게 읽히게 하고 있고 화자들의 일상사와 생각의 깊이를 엿볼 수 있게 함으로써 평소 이들과 대화를 나누지 못한 독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준다. 일상적인 어투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생각들을 들어 볼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인 것이다.
소설 ‘상도’로 장안의 지가를 올리고 있는 최인호씨와 프로 경영인 윤윤수씨와의 대화는 한국의 경제상황과 산업화의 문제점들을 들춰내 보여준다.
책의 제목은 이윤기씨가 딸에게 소개한 ‘무가(巫歌) 본풀이’의 첫 머리로 이씨는 어린 시절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부르던 이 노래는 요즘에 불러도 눈물이 난다고 한다.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너희 아버지 어디 갔니?/우리 아버지 배를 타고 한강수에 놀러 갔다./봄이 오면 오시겠지?/봄이 와도 안 오신다./꽃이 피면 오시겠지?/꽃이 펴도 안 오신다./여름이 오면 오시겠지?/......”.
밑줄쫙-좋은 것은 가시밭길 너머에 있다
‘돈 안되는 인문학’이라는 말 함부로 하면 안된다.…나의 목적은 한국에서 서양 신화 수입해 팔아, 거기에서 남는 이문으로 서양에서도 통하는 한국인 철학도를 하나 키우자는 것이다. 우리가 모두 달려들어야 한다. 그래서 너는 자아 네 딸로부터 ‘엄마는 어쩌다 이런 돈 안 되는 철학에 빠지셨어요’, 이런 말 안 들었으면 좋겠다. 나도 노력하겠지만 너도 부디 그런 풍토 만드는데 뛰어들어라. 가시밭길이다. 하지만 좋은 것은 반드시 가시밭길 저 너머에만 있다. 그래서 너를 지원하는 거다.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 중에서 이윤기씨가 철학을 전공하고 있는 딸에게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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