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내부 갈등 부추겨

8·15 평양공동행사 남측 참가자 중 한 사람이 만경대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는 내용을 남겨 그렇지 않아도 말많은 평양공동행사에 큰 파문을 던지고 있다.
“만경대 정신이란 말은 처음 들어보는 말이지만 만경대는 김일성의 출생지이자 북한이 대외적으로 혁명사적으로 선전하는 곳인만큼 만경대 정신을 이어받아 통일하자는 것은 북한의 주체 사상에 따라 통일하자는 얘기로 해석될 수 있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김일성의 항일 무장 투쟁 경력을 기초로 강력한 민족주의를 표방하고 있어 일면 그럴 듯하게 들리는 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북한 주체사상의 핵심은 수령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에 있다. 인민이 수백만 명이나 굶어 죽어도 체제 개혁을 망설이는 반인민적 요소를 정당화하는 것이 바로 주체사상이다. 북한의 이러한 반민주성은 대북 화해 협력 정책을 추진하는데 목에 가시처럼 남한 사회에 항상 껄끄러움을 남기고 있다.
이런 마당에 행사로 인해 다소 들떠 있었다 하더라도 “만경대 정신” 운운한 참석자의 방명록 기록은 지극히 사려가 결여된 행동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특히 아직 남북간의 정치적 화해가 완결되지 않은 마당에 이러한 행동은 남한 내부의 갈등을 부추겨 오히려 남한의 일관되고 안정적인 대북 화해정책을 뒤흔들 소지마저 안고 있다. 남측 방북단의 많은 인사들이 방명록 파동을 일탈과 객기로 규정하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파동때문에 자율적 민간 교류가 저해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방북단의 어떤 사람은 이번 사태를 너무 우려한 나머지 “우리가 통일의 역적”이 되고 있다는 한탄을 했다 한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비관이다. 현재의 남북관계는 상호 공존과 공동 이익을 추구한다고 하면서도 상호불신이 뿌리깊게 남아있는 과도기에 있다.
이러한 이중성으로 기대와 우려가 항상 공존하는 불안정 상태에서 남한 사회의 다양한 정치사회적 입장이 대북 관계에서도 그대로 표출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번 파동도 어떤 점에서는 역설적으로 북한사람들에게 남한의 다원주의를 인식시키고 평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너무 비관적으로 판단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 번의 정상회담으로 반세기에 걸친 불신이 사라지지 않듯이 방북단의 한 사람이 방명록에 남긴 한 줄의 코멘트로 민간교류가 중단되지도 않을 것이며 또 그래서도 안될 것이다.
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민간교류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하고 보다 성숙된 자세로 민간 교류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적 계산에 의해 움직이는 당국자간 접촉보다 마음과 정을 나눌 수 있는 민간 교류야 말로 남북간의 신뢰를 높이고 장기적으로 북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매개체로 적격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번 파동을 반면교사로 삼아 민간교류의 성공을 위한 여러 조건들을 검토해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북한 체제의 반민주성과 대북 화해 협력 정책간의 껄끄러운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국론 분열을 방지하면서 민주 사회가 보호해야 할 가치의 다양성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의 도출이 시급하다고 하겠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