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무기력한 우리외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총리, 그가 왔다 갔다. 혹시나 하는 소박한 기대마저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돌아갔다. 자로잰듯한 외교적 행보였다. 자세와 말투, 시종 유연했고 빈틈이 없었다. 한일 양국간의 첨예한 현안들 사이를 마치 미로를 헤치는 물결처럼 빠져나갔다. 굽이칠 때와 달려나갈 데를 훤히 꿰뚫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번에도 역시 우리는 밀렸다. 일본의 힘에 밀리고 꾀에 밀리고, 심지어 우리자신에게 조차도 이기지 못했다. 일부 시민단체들만이 고이즈미를 밀어부쳤지만 허사였다. 한마디로 역부족이었다. 고이즈미외교 앞에서 한없이 왜소해져야 했던 우리는, 이번에도 예외없이 그의 등 뒤에서 그의 말꼬리를 잡는 것으로 스스로를 합리화시켜야했던 것이다.
이번 APEC에서도 양국의 정상은 재회했다. 역사교과서왜곡문제, 꽁치문제 등 7개 쟁점 현안의 타결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그 역시 미래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왜 일본외교 앞에만 서면 우리 외교는 작아지는가. 이것이 바로 해묵은 일본문제의 해법을 찾는 원점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외교는 현실이다. 힘의 크기가 국가의 몫을 결정한다. 국제정치적 지분을 증가시키면 당연히 외교적 파이도 많이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 탓만 할 게 아니다. 그들과 마주 서있으면서도 시간과 기회를 낭비함으로써 국가의 몸집을 키우지 못한 우리에게도 ‘절반의 책임’은 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우리의 정신이 똑바로 세워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는 가장 중요한 對日정서가 하나로 결집되지 않고 있다. 일반 국민이 가진 반일 감정만큼 친일의 잔재가 이 나라 지배층에 깊고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일전선(對日戰線)의 극대화를 통한 극일(克日)이 불가능한 것은 자명한 이치다. 게다가 그들의 외교 역시 우리보다 한 수 위다. 일본외교는 멀리 보고 방향을 바로 잡는다.
2차대전 패전 후 일본은 부활의 첫단추를 국제적 고립을 피하는 UN가입에서 찾았다. 이를 위해서 하토야마(鳩山一郞)수상은 당시 거부권을 가지고 있던 소련에게 쿠나시르 등 남쿠릴열도상의 4개섬들을 과감히 양보했다. 미래의 보다 큰 실리를 위해 국토의 살점을 떼어내는 아픔을 감수했던 것이다. 현실외교의 지형지물도 잘 이용한다. 2차대전 후의 냉전구도나 미국의 안보우산을 철저히 이용해왔다. 요시다(吉田茂) 이래의 이른바 경제제일주의나, 나카소네(中曾根康弘)로부터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한 정치·군사적 ‘국제국가전략’이 그것이다. 서두르지도 않았지만 결코 머뭇거리지도 않으면서 오늘 고이즈미代에 이르러서는 ‘패전의 족쇄’를 모두 풀었다. 정책 역시 요시다로부터 고이즈미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기조 위에서 각자의 색깔을 발하고 있다. 그리고 끝까지 인내한다. 영토에 대한 집착이 유달리 강한 일본이었지만 반세기동안이나 기다렸다.
남쿠릴해역에서 우리를 밀쳐냄으로써 “북방4개섬은 우리 땅”이라고 지금에서야 러시아에게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끊임없이 준비하고 기회를 기다리는 일본과 일본 정치의 외교다.
정신과 외교, 어느 것 하나 변변찮은 우리가 ‘절반의 책임’마저 망각하고 일본 앞에 서는 한 끊임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고이즈미를 앞에 두고도 서로 싸우는 우리 정치가 정신을 차리지 않는 한 우리는 그들의 ‘립 서비스’에 一喜一悲할 수밖에 없다. 바다는 줄어들고 꽁치는 빼앗기고 이러다간 그나마 불안한 ‘독도’마저 끝내 그들 손에 넘어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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