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만큼 아름다운 것

‘겨울이 왔으니 봄 또한 멀지 않았도다.’ 영국 시인 셸리가 한 이 말은 우리들에게 희망과 기다림의 교훈을 준다.
기다림은 생활 가운데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짧은 시간이거나 긴 시간이거나 간에 기다림의 의미는 삶에 희망으로 다가선다. 때로는 생활 사이의 공백이 되기도 하지만 활동과 활동을 이어주는 역할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기다림이라는 시간을 통하여 삶을 계획하고 준비하며, 휴식, 반성, 재출발하기도 한다. 기다림은 희망을 동반하여 삶을 활기 있게 하여주는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기다림에는 인내가 수반된다. 병원에 가면 접수를 한 다음 진료 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 개인 병원이라면 짧은 기다림으로도 진료를 받을 수 있지만 종합병원에서는 오랜 기다림 끝에 진료를 받게 된다. 몇 년 전에 실시된 대전 엑스포를 기억해보자. 얼마나 긴 줄을 서서 지루하게 기다려야했던가. 오죽했으면 그 행사를 통하여 우리 국민들의 줄 서기 문화가 정착되었다는 평까지 나왔을까. 방송에 출연하는 가수들. 삼분 정도의 방영을 위하여 무려 아홉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엑스트라의 수칙 일조가 ‘기다림에 익숙 하라’ 라는 것을 봐도 기다림은 바로 끈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기다림은 삶의 애환이기도 하다. 정쟁의 제물이 된 폐비 신씨가 중종 임금의 부름을 기다리며 인왕산에 걸쳐두었던 치마바위.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돌아오지 않는 지아비를 애타게 기다리다 지쳐서 망부석이 된 여인의 슬픈 전설을 생각해보자. 때로는 인간사에서 기다림만큼 쓰라린 고통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견디어낼 때 기다림은 아픔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다. 근래에 ‘빨리 빨리’에 익숙해진 우리들의 정서를 생각하면 기다림의 슬기와 교훈을 새겨 보아야할 시점이기도 하다.
기다림은 자연의 원리와 인륜의 도리에 따라야 함을 가르쳐준다. 음식 주문을 해놓고 자꾸만 빨리라고 독촉하는 사람을 본다. 보리 갈아놓고 돌아서서 싹트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끼어 들기가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며, 순리를 외면하면서 마음 편히 살아갈 수가 있을까.
기다림은 믿음과 신뢰를 동반하고 있다. 메시아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인, 그들의 기다림은 바로 믿음이다.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으로 교류되는 재화의 거래나 정보의 교환도 상호 신뢰의 바탕 위에서 기다림의 시간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마음. 약속 이행을 위하여 정한 날을 기다리는 마음. 서둘지 않는 신중함. 남을 배려하여 양보하는 마음. 인간의 삶 속에서 수없이 거듭되는 기다림은 바로 삶의 질서에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다림에 능숙한 사람은 넉넉한 품성의 소유자이며 바른 인성을 지닌 인격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다림은 사물의 이치에 따르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야 만사는 이루어진다. 시간은 상처를 치유하는 약이요, 고통과 슬픔을 이기는 치료제이기도 하다. 효소 식품을 개발한 조상들의 슬기도 기다림의 이치에 순응한 것이며, 대기만성이란 지혜도 시간의 중요함을 일깨운 가르침이다.
새해 벽두부터 혹독한 추위가 몰아쳤지만 겨울은 역시 추워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추위가 시간 속으로 흘러가면 봄이 돌아오리라는 원리를 믿기에 희망을 가지고 능히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새해를 맞이하여 통치자의 기자 회견이 있었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약속들이 많았다.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 봐야 할 것이다. 순리와 질서 속에서 기다리며 살아가는 서민들. 그들의 가슴에 실망으로 남는 약속이 아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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