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한 정치인 부재시대

3월이 되면 새 학년이 시작된다. 초등학교에서도 학급 정·부회장이 선출되는가 하면 전교 어린이 회장 선거도 실시된다.
해마다 실시되는 이런 광경을 보면서 황당함을 금치 못하는 대목이 있다. 발표하는 어린이마다 ‘내가 당선되면 우리 학교를 이러 이러한 훌륭한 학교로 만들겠다’ 고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다. 혼자의 힘으로 어떻게 그런 훌륭한 학교를 만들 수 있을까.
더군다나 어린 학생의 몸으로. ‘좋은 학교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고 해야 옳지 않을까.
근래에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 후보자 경선 과정을 보면서 이와 흡사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하나 같이 자기가 당선되면 이런 이런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다. 얼마나 위대한 힘을 가졌기에 혼자서 그런 나라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열성을 아끼지 않겠다 거나 훌륭한 정책을 펴겠다고 말한다면 너무 소극적인 표현일까.
철들기 전의 아이들의 공통된 장래 희망이 대통령이다. 공부를 하고 사리에 눈 뜰 때가 되면 희망도 다양해진다. 학자, 법관, 군인, 교사, 의사, 간호사, 엔지니어 등등으로. 지금 저렇듯 떠들어대는 정치인들은 철이 없는 것일까, 정말로 나라를 걱정하는 것일까. 정치가의 목표는 오로지 대통령 되는 것인가.
그들이 말하는 애국심이 진실이라면 대통령이 아니 된다 하여 서운함이 없어야 할 것 아닌가. 이순신 장군은 백의 종군으로 구국의 선봉에 섰고, 김구 선생은 우리나라가 독립이 된다면 정부 청사의 화장실 청소부가 되어도 좋다고 말했다. 오늘 날 많은 정치인 중에 이처럼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유능하고 참신한 인물이 정계에 떠오르는가 싶으면 어느 새 대통령 병에 오염되어 서민들을 실망시킨다.
사람들의 언행이나 눈빛, 표정, 억양 등을 통하여 진실과 욕심을 구별할 수 있다. 내 눈에 비친 정치인들의 언행은 진실보다 거짓에, 애국보다는 사욕에 더 치우치는 것 같다.
흥분된 표정은 과욕으로 가득 찼으며 발악하듯 외쳐대는 주장은 속마음을 위장하려는 것 같다. 상대 후보를 헐뜯는 장면은 더욱 가관이다. 초등 학생들의 선거전에서도 남을 헐뜯지는 않는다. 나이 어린 학생들 보기가 부끄럽고 그런 태도로 나라를 바로 세울 수가 있을지 심히 우려된다.
선거가 가까워져 오면 여러 해 동안 머리 맞대고 정책을 숙의하던 동지도 하루아침에 결별하는가 하면, 자기만이 깨끗한 사람인양 별난 선언으로 서민들을 당혹케 한다.
그들의 만남과 헤어짐은 정책에 따른 것이 아니고 철저히 이해 관계에만 따르는 것 같다. 아무리 훌륭한 인물이라도 내게 이득이 없으면 돌아서 버리고 용렬한 위인(?)이라도 유리하면 손을 잡는다.
오랜 기간 인고의 세월을 보낸 우리 민족이다. 땀도 눈물도 무던히 흘렸다. 이제는 경제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세계에서 내로라 할 수 있는 나라로 발돋움하였다. 올림픽을 치르고, 월드컵을 치르고 지구촌의 선두 그룹으로 치닫는 우리가 어찌 정치분야만은 이렇듯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제 자리에서 맴돌고만 있는가. 우리 민족에게 물질의 복을 풍성하게 허락하신 하느님께서 지도자의 파견에는 왜 이다지도 인색 하실까.
한 목숨 초개같이 던져서 나라를 구할 의인이 이 땅에는 과연 없는 것일까. 국가와 민족을 위해 멸사 봉공하는 지도자. 밝은 눈과 바른 마음으로 국정을 꽃피워 온 겨레가 믿고 따를 위대한 지도자는 정녕 없는 것일까,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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