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개방‘돌아올수 없는 다리’건너

북한이 급변하고 있다. 신의주를 자본주의시장에 과감히 내놓는가하면 조총련계 초·중학교에 걸린 김일성부자의 초상화까지 떼어내는 등 가히 파격적인 결단의 연속이다. 과거 중국이 걸어온‘개방의 길’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남한이 생각하는 속도를 앞질러 나가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다. 북한이‘개방 쪽’으로 옮겨놓기 시작한‘발걸음의 眞僞’에 대해서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국내외의 일치된 시각이고보면 북일정상회담-평양선언-아셈한반도정치선언에 이르는 일련의 변화들은 한반도의 장래를 낙관하게 하는 청신호가 분명하다. 성급한 판단인지는 모르지만 북한은 이미‘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있는 게 틀림없다.
‘고슴도치 북한’을 은둔으로부터 끌어낸 것은 무엇보다 북한 자신의 인식변화다. 개방이 시대적 대세라는 것을 모를리 없는 북한이지만 섣불리 행동에 옮기지 못했던 것은 급속한 개방이 가져올 지배체제붕괴에 대한 불안이었다. 그런 북한을 본질적으로 움직이게 만든 중요한 動因중 하나는 붕괴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정권과 바람앞의 촛불 이라크 후세인정권이다. 더이상 고립된‘악의 축’으로 남아서는 정권에 이로울 것이 없다는 판단을 했음직하다. 거기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더 이상 자신들의 입지를 보장해줄만한 힘도 의지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현실인식이 더 버틸 여지마저 없애버렸을 것이다. 어려운 북한내부 경제상황도 압박을 가했을 것은 물론이다. 다음으로는 북한의 불안감을 씻어주기에 충분한 국제정치적 여건의 호의적 변화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햇볕으로 상징되는‘그들을 향해 열린 우리의 자세’일 것이다. 지난 서해교전사태 때에는‘햇볕의 효용성’에 대해서 견디기 힘든 비판과 질시를 받았지만‘햇볕정책’은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노선의 일관성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국제정치적 여건을 북한의 개방에 포커스를 맞춰 놓을 수 있었고, 궁극적으로 북한의 신뢰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북한이‘알아서 기면’주고 삐딱하게 나가면 언제든지‘파이프라인’을 끊겠다는 식의 논리는 이제 접는 게 옳다. 북한이 우리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는 또다시 적대관계로 되돌아가는 악순환을 되풀이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햇볕에 조건이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와 단순비교할 수는 없지만 독일이 그랬다.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 통합이고 통일이다. 남북의 이질적 사상과 체제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방법은 많이 만나고 많이 나누는 것밖에 없다. 가지면 가질수록 보수로 더욱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는 소박하고 단순한 상식으로부터 남북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을 지금의 결과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나친 낙관이나 조급증은 금물이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비추는 햇볕에는 한계가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북한인민들은 현재도 차광막에 둘러쌓여 있다. 수십년간 누려온 기득권을 근본부터 무너뜨릴 햇볕을 달가워할 지배층은 없을 것이다. 때문에 북한 지배층은 ‘햇볕의 양’을 인위적으로 조절해왔다. 앞으로도 주민들을 한꺼번에 햇볕 속으로 내몰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북한주민들 역시 동독국민들처럼 자본주의의 맛을 모르고 오로지 자력갱생과 음지에 길들여져 있어서 단번에‘햇볕의 기운’이 그들에게 가닿지는 않을 것이다. 신의주 특별행정구의 제2의 홍콩 발상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햇볕의 공급량에 한계가 엄연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역시 시간이 문제다. 따라서 우리 내부의 불필요한 논란은 자제돼야 한다. 또한 그 어떠한 국내외적 강성무드도 북한 군부 등 매파의 입지를 강화시켜 북한지배체제의 역학구도를 요동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제거해나가야 할 암초다. 북한을‘가장 빨리 잘’녹일 수 있는 것은 ‘조건없는 포용과 자본주의’라는 햇볕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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