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문의 영광’은 5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시쳇말로 대박을 터트린 작품이다. 그러나 영화내용을 보면 폭력, 코믹, 멜로 등 이것저것 집어넣은 해물잡탕이고 요리솜씨(?)도 서툴다. 잡탕 본래의 얼큰한 진미도 찾기 힘든다. 물론 대중예술이 작품성만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발상이 유치하고 이야기도 단조롭다. 서울법대생 사위를 보기 위해 깡패가족들이 벌이는 황당한 음모와 말도 되지 않는 협박이 영화의 주제다. 원색적인 욕설이 난무하고 억지 웃음을 강요하며 시나리오도 너절하다. 조폭을 모방한 저급한 수작과 일류대학에의 맹목적인 집착을 코믹하게 묘사하려다 보니 기워 입은 무명바지처럼 결이 맞지 않다.
서울법대생 사위를 보는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까지 생각하는 과장논리는 깡패사회의 잣대만은 아니다. 서울법대는 모든 한국인의 선망의 대상이고 우리 교육의 목표로 둔갑한지 오래이다. 고등학교의 서열도 이 대학의 입학생 숫자로 일열종대로 세우고 있다. 결국 이런 영화를 만들게 한 왜곡된 풍토가 우리교육의 현주소라는 점이 안타깝다.
미국 교육학자 마리뗑의 명저 “기로에 선 교육”의 서두에 제시된 ‘현대교육의 7오류’는 뼈 아픈 지적이다. 우선 목적의 오류다. 교육은 윤리적 인간을 양성하는 지극한 예술인데 그런 목적은 실종되고 능률만 판을 친다는 것이다. 궁극적 실제 탐구가 배제되고 상식적 인간관만 활개치는 이념의 오류, 진리 감각이 소홀해져 회의주의자들만 양산하는 행동주의의 오류, 시민교육에 밀려난 인간교육의 오류, 지식 암기위주의 주지(主知)주의 오류, 지성을 의지에 굴복시키려는 주의(主意)주의 오류, 교리 문답서를 외게 하는 것 같은 교육만능주의 오류들이 그것이다.
우리교육의 오류는 미국보다 훨씬 심각하다. 대학 간판을 가져야 사람 행세를 하는 사회분위기부터 젊은이들을 주눅들게 한다. 소질, 적성계발은 빛 바랜 간판이며 입으로는 창의성교육이고 교실에는 살벌한 입시경쟁 그대로다.
교육풍토도 사람세도 독일병정처럼 굳어 있다. 그들 앞에 사천왕처럼 버티고 있는 게 학벌주의 사회관행이고 쇠말뚝처럼 요지부동이다. 열여덟번이나 손바닥 뒤집듯 바꾼 대학입시제도로 아직도 당사자들은 우왕좌왕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추진하던 교육개혁은 쓰레기통에 들어가기 일쑤다. 교육정책도 탁상공론이 많고 오랜 관행도 두부모 자르듯 없앤다. 백년지 대계는 고사하고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더 암담한 것은 교육이 출세도구로 타락했다는 사실이다. 마리뗑의 ‘목적 오류’ 그대로다. 몸을 팔아서라도 자식 사교육비를 버는 희한한 자기합리화가 이루어지는 나라에서 교육의 의미는 이미 물 건너 간지 오래다. 머리 좋은 수험생들이 적성에 관계없이 의과대학으로 몰리는 세태나 이공계 대학생들이 사법고시 준비에 매달리는 기현상이나 오십보 백보 수준의 ‘목적 오류’다. 입시철이 다가오면 대부분 학과에 관계없이 일류대학만 고집한다. 뿌리 깊은 학벌사회에 대한 자기방어다. 오죽하면 어느 대선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교육부’를 없애겠다 했을까? 추측컨대 그의 진의는 세계경쟁력을 갖는 포항공대 같은 특성화대학이 지방마다 있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영화 ‘가문의 영광’이 히트한 까닭도 영화가 깔고 있는 냉소적인 알레고리와 이런 오염된 교육세태를 비아냥거리는 데서 얻는 심리적 쾌감과 역설적인 교훈이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