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도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야,
富의 이전, 주민의식에 좌우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지방분권(地方分權)’을 ‘국정(國政)의 10大아젠다’로 선정했다. 지방분권을 국정의 주요한 지표로 정한 것이다. 그에 따라 현재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중앙정부에 집중된 권한을 지방으로 분산하는 방안에 대하여 심도 깊은 검토를 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부와 권한은 모두 중앙에 집중되어 있다. 그것은 GRP(지역총생산) 등 각종 통계로 보아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수도권은 과밀화되어 비명을 지르는데 지방도시는 인구가 줄어들고 있어 ‘인구 늘리기 운동’까지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살기가 어려우니 전부 수도권으로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부와 권력을 지방으로 분산하여 지방도 살만한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곧 지방분권화의 출발점인 것이다.
그간 이와 같은 당위성에 공감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지방분권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던 것은 말로만 지방분권을 주장했지, 실상은 권력을 잡은 자가 그 권력을 지방으로 분산해 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노무현대통령 당선자는 가시적인 노력을 할 것으로 보여 우선적으로 지방분권의 가능성은 커졌다. 그런데 문제는 지방분권을 중앙정부의 권력을 넘겨주기만 하면 이루어질 것인가에 있다.
거듭하거니와 지방분권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지방으로 부와 권력을 넘겨 만성적인 중앙집중의 폐해를 해소하고 지방도 살기좋은 곳으로 만들어 보려는데 있다. 부와 권력이 중앙에 집중되어 있으니 교육을 위해, 직장을 구하러 모두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바람에 지방은 공동화되고 지방의 살림은 피폐화되는 악순환을 막아보자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중앙정부의 노력만으로 지방분권이 가능할지에 대하여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당연하지만 지방에 권한을 분산하는 것이 지방분권의 절대적인 명제이긴 하나, 지방자치단체에 권한을 분배한다고 하여 지역주민의 복지수준이 높아질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수준의 지방자치단체에 권한만 확대해 주면, 자치단체가 그 권한을 유효적절하고 공정하게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조자룡의 헌칼’을 넘겨주어 칼자루만 휘두르게 하는 것은 아닌지 자못 궁금하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전국의 많은 자치단체장이 비리혐의에 연루되고 있고,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들의 각종 비리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특단의 대책이 없이 권한만 확대해 주면 우선 ‘좋은 일’인가에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다. 자본주의 시장질서에서 부의 창출은 기업이 담당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의 엔진은 건전한 기업가가 기업활동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고 고용을 확대함으로써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를 지방에 분산시키려면 기업활동에 도움이 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그래야 지방분권으로 부가 지방으로 넘어올 수가 있다. 그런데 과연 현재의 풍토가 기업활동에 도움이 되는가?
21세기의 기업은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전세계적 표준(全世界的 標準)’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기업가의 마인드는 세계적 표준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살아남을 기업이 없다. 그런데 지역 주민의 수준은 어떤가. 좁은 지역에서 득세하는 천박한 패거리주의, 조금만 돋보이면 활개치는 험담과 험구, 촌티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불성실과 무능, 편협함을 떠나 유치한 수준에 머무르는 지역이기주의의 그늘에서 ‘세계적 표준’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지방에서 기업활동을 하면서도 수도권으로 옮기려는 기업가들이 더 많이 나타나게 된다. 이래서야 어떻게 부가 지방으로 분산될 수가 있는가?
미국에서는 요즘 한창 지방의 세계화(Glocalization)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궁벽한 시골에서도 세계적 수준의 교육과 경제활동여건을 갖추려는 움직임이다. 결국 지방분권의 성패는 지역민,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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