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사진·판화·영상 등 60여점
이미지 추상화·표현의 단순화 극대화
‘그리기의 그리지 않는 상태 지향’

동아시아 특히 한국 미술의 영원한 테제인 ‘기운생동(氣運生動)’을 현대적 어법으로 화폭에 옮기고 있는 화가 이강소씨가 경주에서 종합적인 전시회를 갖는다.
이씨는 28일부터 6월15일까지 경주 아트선재미술관에서 보여주는 이번 전시회에는 최근작 60여점을 내 놓았다. 150~200호 크기의 회화 작품은 물론 사진과 판화, 영상 작품까지 선 보인다. 이씨가 사진을 출품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 현대미술은 서양에서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우리 현대미술을 그들에게 돌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동아시아 미술의 요체인 기운생동입니다”
이씨는 ‘기운생동’이라는 용어가 보여주는 것처럼 한국미술의 생명은 관념이 아닌 기(氣)라고 말한다. 형태와 색채의 단순성으로 보아 우리 전통미술이 서구의 미니멀 아트, 일본의 모노 회화와 유사성이 있어 보이나 화면을 관통하는 힘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1965년 서울대 회화과를 나온 이씨는 졸업 후 10년 가량 실험미술운동에 나서 한국 현대미술을 변화시키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1973년 개인전 때 주막을 화랑 안에 끌어들여 충격을 던졌고, 2년 뒤에는 파리 비엔날레에 참가해 ‘닭의 퍼포먼스’를 소개해 화제가 됐다. ‘닭의 퍼포먼스’는 전시장 바닥에 밀가루를 뿌린 뒤 발목이 끈으로 묶인 닭을 풀어놓음으로써 그 움직임의 흔적을 살피게 했다.
그의 실험은 사진, 판화, 비디오, 조각을 가리지 않고 다방면에서 이뤄졌다. 그러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회화 중심으로 작업하되 동양적 문인화의 품격과 필치를 화폭에 구현하려고 힘썼다. 그의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재료는 분명히 캔버스와 유화물감이지만 문인화의 정신이 흐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씨의 작품은 형태와 색채에서 매우 간결하나 그 안에서 무한한 변화가 느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리, 사슴, 목선, 집, 산 등의 간결한 이미지는 동양의 문인화와 서양의 추상표현주의를 포용하며 상호 결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전시되는 최근작은 이미지가 갈수록 추상화되고 있고, 표현이 단순화되고 있다. 힘찬 붓놀림의 기운과 배경의 여유로운 여백이 이루는 긴장과 이완은 동양화 정신의 극대화된 느낌을 받게 한다.
미술평론가 오광수(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씨는 “그의 최근작은 오리나 빈 배 같은 구체 이미지마저 지워지거나 화면 속에 몇 개의 윤곽선으로 가까스로 남는 등 과거보다 더욱 환원적이다”면서 “격렬한 표현이 잠재워지고 풍경은 더욱 암시적으로 잠재되는 등 그리기의 그리지 않는 상태를 지향하고 있다”고 평했다. 054-745-7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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