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자궁…’<뿌리와 이파리> 펴냄

테세우스 신화로 잘 알려진 미궁(迷宮). 그것은 혼란과 복잡함의 극치로 우리의 머리 속에 각인돼 있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가리켜 “미궁에 빠졌다”고 비유하기도 한다.
‘우주의 자궁 미궁 이야기’(뿌리와이파리 펴냄)는 그러나 미궁이 그러한 카오스적 상황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미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아주 수준 높은 계산과 이성과 질서라는 것이다.
일본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대학 문학부 교수인 저자 이즈미 마사토는 미궁에는 어떤 종류의 구성원리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즉 현대에 이르기까지 미궁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계속 부여해온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그것은 혼란을 의미하지도, 뒤엉킨 통로와 막다른 길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미궁에 빠졌다”는 말은 명백한 오류라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미궁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 책은 한 마디로 미궁의 본질을 찾아 떠나는 시간여행이다. 테세우스 신화의 배경이 된 크레타의 미궁을 모티프로 해 미궁 형상의 원리와 상징적 의미들을 밝히고, 그것이 구체화돼 나타난 고대 이집트, 트로이아, 로마 제국의 미궁들을 소개한다.
여행의 종착점에서, 거의 모든 지역의 인류사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했던 미궁이 왜 동아시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시론을 펼친다. 유럽, 아메리카, 인도 등지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했던 미궁의 형상이 왜 동아시아에는 없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본어판 원서의 것 이외에도 되도록 많은 그림 및 사진자료들을 실었다.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존재 형식의 표현도대체 미궁(labyrinthos)이란 무엇인가? 미궁은 이리저리 복잡하고 어지럽게 뒤엉킨 통로와 막다른 길로 사람의 방향감각을 마비시키는 미로(maze)가 아니다. 미궁은, 외길이고 무조건 중심을 향한다. 따라서 길을 잃을 가능성은 없다.
미궁은, 통로가 교차하지 않는다. 미궁은, 어떤 길로 갈까 하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미궁은, 늘 시계추처럼 180도로 방향을 바꾼다. 미궁은, 내부공간 어느 한 곳도 빠뜨리지 않고 통로가 나 있고, 사람은 모든 곳을 지나가야 한다. 미궁을 걷는 자는 몇 번이고 거듭해서 중심 옆을 지나게 된다. 미궁은, 중심에서 외부로 나올 때 그 모든 통로를 다시 지나갈 수밖에 없다.
미궁 모양은 신석기 시대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영국, 지중해, 인도와 자바, 수마트라, 나아가 아메리카 원주민인 호피 족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발견되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 혹은 존재형식의 표현이다.
(미궁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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