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거주 의원·장관 3명중 1명 미게양

85번째 3.1절을 맞은 1일 오전 9시30분 서울 강남구압구정동의 한 아파트촌·저명인사와 부유층이 모여 산다는 이 아파트촌의 65가구 한 동에 태극기를 게양한 집은 5집에 불과했다.
10가구 가운데 1가구 꼴도 되지 않는 셈·하지만 아침부터 '공휴일'을 맞아 골프채를 실은 고급승용차들이 속속 아파트를 빠져나가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띄었다.
이 아파트의 한 경비원은 "지난주 토요일부터 3일 연휴가 시작되자 '잠시 해외여행을 간다'며 빈 집을 부탁하는 주민들이 상당수였다"고 귀띔했다.
같은 시각 강남구 도곡동의 최고급 주상복합건물에는 아예 태극기가 한 장도 눈에 띄지 않았다.
건물 구조상 베란다나 창문 밖으로 태극기를 게양할 수 없기 때문·부유층이 모여 사는 아파트나 빌라의 경우 현관이나 입구, 경비실에 태극기를 '대표'로 걸어놓기도 하는 것과는 달리 철옹성 같이 외부와 단절된 이 건물에는 '대표 태극기'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독도우표 발행으로 촉발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연예인의 위안부 누드 파문, '친일·반민족 규명 특별법'의 무산 위기로 대일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있지만 이들에게 3.1절은 그저 '기분 좋은 공휴일' 이외의 의미는 없는 듯 했다.
일부 국회의원과 장관들 역시 3.1절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태극기 게양에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연합뉴스의 취재에 따르면 서울시내에 거주하는 장관을 비롯해 각 당의 주요 당직자, 지역구가 서울시내인 국회의원 등 이른바 '지도층' 60여명의 국기게양 실태도실망할 만한 수준이었다.
한해의 첫 국경일인 이날 오전 태극기를 달지 않는 곳은 여야를 가리지 않았다.
이날 오전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사는 야당의 상임중앙위원 K의원과 P의원, 전당대표 H의원을 비롯해 강남구 압구정동의 K 중진의원, 여당의 원내대표 K의원 등의자택엔 태극기가 '휘날리지' 않았다.
성북구의 여당소속 S의원과 Y의원, 도봉구의 야당소속 S의원, 동작구의 다른 야당의 전 대표 S의원, 모 부처 J장관 등 모두 20여명의 자택엔 태극기가 온데간데 없었다.
다만 여야 4당 대표와 국회의장, 검찰총장의 자택과 공관에는 모두 태극기가 게양돼 있어 그나마 '체면치레'를 했다.
독립유공자 2천327분의 위패가 모셔진 서울 서대문구 독립공원 내 독립관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방치돼 있었다.
이 건물은 일제시대 독립협회 사무실로 사용되다 일제가 강제로 철거한 뒤 90년대 초부터 역사적 의미가 조명돼 1996년에야 전국에서 유일한 순국선열 위패봉안소로 단장됐다.
그러나 일반인에 공개된 지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이곳은 관리소홀로 '폐가'나다름없는 상태다.
허름한 한옥 건물 내부는 먼지가 가득했고 한지로 된 몇몇 출입문은 관람객들이뚫어놓은 구멍이 숭숭 나 있었다.
관리를 맡고 있는 순국선열유족회 측은 "날이 따뜻해 지면 시민들이 술판을 벌이는 것은 예사고 밤이면 노숙자들이 몰려와 잠자리로 쓰이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3.1절을 맞아 자녀와 함께 인근 서대문형무소를 찾았다는 정민석(34)씨는 "겉으로는 요란하게 '극일·반일'을 외치지만 정작 내실을 다지지 못하는 한국인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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