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옥교수의 경주의 속살 신라 이야기-5

눅눅한 장마 끝에 바로 찾아온 무더위. 무리지어 엉겨 있는 높고 낮은 구름 사이의 여름 하늘이 매미소리에 진저리치듯 파랗다. 예가 아닌 줄 알지만 더위 핑계대고 중생사 절 턱밑에 차를 바싹대었다. 잠시 마애불상을 보려 몇 걸음 걸으면서도 연신 땀을 훔친다. 흐르는 땀이 옷섶에 배어나온다. 서툴게 쓴 글씨지만 도량다운 내용에 염치를 용서받는다. “여기는 신성한 수도도량이므로 차소리를 크게 내지 말고 천천히 조용하게 차를 운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삼국유사 탑상편 <삼소관음 중생사>에서 상상되는 가난한 절, 중생사의 모습과 누추하고 남루한 지금의 중생사가 천년 세월에 변함없다는 느낌을 가진다. 잡초 우거진 풀밭을 앞에 두고 무너질 듯한 섬돌 몇 개 오르면 정면에는 낡은 비로전이, 그 좌우에는 기울어가는 후락한 기와집 두 채가 마주하고 있다. 삼국유사 이야기 속 성태스님과 같이 가난하지만 눈빛 형형한 노스님과 8순의 늙은 공양주보살 한 분이 각각 한 채씩 차지하고 있다. 방금 점심공양을 마친 듯 공양주보살은 문도 활짝 연 채 오수를 즐긴다. 졸린 듯 기지개 켜는 작은 개 두 마리가 사람 온 기척에 작게 꼬리친다.
고려시대 중생사의 주지 성태스님은 가난하여 절을 떠나려하며 보살화상께 아뢰자 꿈속에 성인이 나타나 떠나지 말라며 시주를 약속한다. 13일 후에 김해에서 온 사람들이 쌀 여섯 섬과 소금 네 섬의 시주를 말과 소에 싣고 절을 찾는다. 시주 나간 이 없다며 성태가 거절하자 법당의 관음보살화상이 바로 시주받으러 오신 스님이었다고 말한다. 그 보살화상은 최은함이 중생사의 보살화상께 기도하여 얻는 자식을 맡기자 보름 동안이나 젖 먹여 키우기도 하였다. 그가 바로 고려 초의 대학자 최승로이다. 절에 불이 나자 법당에서 나와 스스로를 지켜낸 신령스러운 존재이기도 하였다.
그 영험한 중생사의 보살화상은 누가 그렸는가.
중생사에 있는 관음보살상은 중국의 장승요라는 화공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장승요는 천재적인 화가로, 중국 황제의 꿈에 나타난 십일면관음보살의 상을 그려내는 신기를 발휘하기도 하였다. 화공이 황제의 꿈속에 나타난 관음의 상을 그리기 전에 그렸던 인물은 바로 황제가 몹시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그 여인을 그리는 중에 붓을 잘못 떨어뜨려 배꼽에 빨간 점을 찍어 놓았다. 그런데 빨간 점을 아무리 고치려 해도 고칠 수 없었다. 화공은 이 점은 날 때부터 있던 점일 것이라 생각하고 황제에게 배꼽 밑에 빨간 점이 그려진 여인의 그림을 바쳤다. 그런데 황제는 그 그림을 보고 배꼽 밑에 있는 점은 속에 감추어진 것인데 어찌 그릴 수 있냐며 화공을 의심하고 죽이려 하였다. 이에 한 신하가 화공의 사람됨이 어질고 곧은 것을 밝히고 용서해줄 것을 아뢰었다. 그러자 황제는 한 발 양보하여 자신에 어재 꾼 꿈속의 사람을 그려서 바친다면 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이에 화공이 십일면관음보살의 상을 그려 바치고 목숨을 구하였다. 그 후 그 화공은 중국에서 부처의 나라인 신라에 와서 중생사의 관음보살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신기의 능력을 가진 화공에 의해 그려진 중생사의 보살상이기에 중생사가 위기에 있을 때나 중생사를 찾는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의 청을 들어준 관음보살이었던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승려가 수도생활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관음보살의 화신이 나타난다. 관음은 도를 닦는 승려나 고승 대덕에게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불법의 길에서 이탈하려는 이는 더욱 정진하게 하며 또한 편협한 수도생활을 하는 이에게는 해탈의 길이 어려운 데 있는 것만은 아님을 깨닫게 한다.
삼국유사에서 관음이 여성의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관음은 대자대비를 근본 서원으로 하는 보살이다. 대자대비하여 중생이 괴로울 때 그 이름을 외우면 그 음성을 듣고 곧 구제하는데, 관음이 세상을 교화하기 위해서나 돕기 위해 중생에게 나타날 때는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여러 가지 형체로 나타난다. 이를 보문시현(普門示現)이라 하며, 33신(身)이 있다고 한다. 중생사의 관음보살 상과 관련하여 관음은 시주스님으로도 등장하고, 중생사의 주지승이었던 점숭의 모습을 빌어 나타나기도 하였다. 또 실제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젖먹이를 통해서 여성으로 나타났음을 암시하기도 하였다.
세속의 땀과 때에 전 나에게 땀 훔치라며 깨진 부채 건네주시는 스님께서 하신 한 마디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절이 적막합니다. 신도들이 자주 찾지 않나요?”
“가난해야 도인이 나지. 절집이 부자면 탈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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