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화시대에는 외국어실력이 시대를 헤쳐나가는 武器가 된다. 이른바 강대국의 언어는 쓰임새가 많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배워야 하지만,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국가의 언어교육도 유익하다.
‘한글전용 열풍’이 불어 모든 신문들이 ‘한글세대’의 취향에 맞춰 漢文쓰기를 극히 자제하고 있다. 어떤 신문은‘괄호속의 한문’까지 배제하고 있다. 학교에서 한문교육을 ‘필수’에서 ‘선택’으로 바꿨다.
이것이 과연 잘 한 일인가. 이른바 ‘동양3국’이라 불리우는 한국, 중국, 일본의 언어는 ‘漢나라시대의 언어’인 한문을 뿌리로 삼고 있다. 한글을 창제할 때 成三問 등 세종시절의 집현전 학자들이 중국을 여러번 왕래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의 70%이상이 한문단어이고, 학자들이 쓰는 전문용어는 거의 90%이상이 한문투 어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언어의 뿌리가 한문이니 그렇게 될수 밖에 없다. 일본글의 글자꼴은 한문자에서 따온 것이고, 일본어 문장은 거의 절반가량이 한문이다.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이른바 라틴어계 언어들은 그 뿌리가 고대로마어에 있다. 그래서 이런 국가들의 대학에서는 라틴어를 필수과목으로 가르친다. 일본이 한문을 필수로 가르치는 것과 같다.
언어란 ‘문화를 실어나르는 수레’라 한다. 동양3국은 같은 문화를 공유한다. 글씨를 예술로 승화시킨 書藝는 동양3국밖에 없고, 文人畵란 그림형식을 가진 것도 3국이 같은 문화권임을 말한다. 같은 문화권이라면 그 언어의 뿌리를 잘 배우고 간직하는 것은 당연히 바람직하다.
그런데 유독 한국만이 한문교육을 소홀히 하고 한글전용을 고집하는 것은 문제다. ‘발음은 같으나 문자와 내용이 다른 낱말’을 우리는 많이 가지고 있다. 한자를 모르면 아예 해석이 되지 않는다. 북한에서는 한글학자들이 대거 동원돼 ‘순수조선어’혹은 ‘문화어’를 만들었지만 지금 ‘최선은 아니었다’는 반성이 일고 있다.
한국이 중국과 國交를 재개하면서 對중국 투자가 늘어나고 교역이 늘고 유학생 등 인적교류도 갈수록 빈번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한문교육은 필수적 소양이다. 일본에 가도 한문만 알면 별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월드컵 등 국제경기로 중국인들이 많이 올 것인데, 관광안내서나 도로표지판에 한문으로 된 안내문은 없다.
언어의 뿌리와 문화의 뿌리를 단절하겠다는 생각은 국쇄주의적 발상이다. 비록 한글전용정책을 밀고나가더라도 한문교육의 필요성은 크다. 앞으로 漸增될 중국과의 교역에서 한문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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