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로 대변되는 신용사회란 쉽게 말해서 ‘외상거래가 일반화된 사회’를 말한다. 외상거래란 ‘먼저 맞돈 없이 사고 다음에 갚는 상거래’인데, 이런 제도는 편리한 면도 있지만 엄청난 위험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속담에 “외상이라면 남의 소도 잡아먹는다” 했다. ‘일단 쓰고 보자’는 풍조가 일반화된 사회라면 신용카드로 인한 불행이 폭증할 수밖에 없다.
최근 카드빚에 몰려 저지른 악행과 불행이 신문 사회면을 연일 장식한다. 자살하는 사람이 늘고, 카드빚 갚으려고 살인하는 예도 적지 않고, 유괴, 강도행각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일정한 수입이 없는 청소년 학생들에게도 무분별하게 카드를 발급하는 회사들의 책임도 없지 않다.
근래에 들어 개인파산 신청을 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2000년에는 15건이었는데, 지난해에는 31건으로 폭증했고, 올 들어서는 6월말현재 19건이니 해마다 증가추세에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개인파산 신청을 하는 사람들이 대게 30~40대 서민가정의 가장이라 한다. 의욕적으로 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맞고 카드로 이리저리 이른바 ‘돌려막기’ 를 하고, 고리의 사채를 빌려쓰고, 카드깡으로 급한 불을 꺼다가 결국 카드사의 상환독촉을 견디지 못해 ‘최후의 결단’을 내린 것이다.
30~40대의 서민층 가장들중에 ‘신용사회의 사망선고’를 신청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파산선고가 내려지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못하게 된다. 부채를 면제받게 되는 대가로 제약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흡사 신분제가 철저하던 왕조시대의 ‘천민’신세로 추락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부채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다시 재산이 생기면 언제라도 강제집행을 당하게 된다. 이것을 면하려면 법원에 면책신청을 해야 하지만, 면책결정은 엄격한 심사를 거치기 때문에 활동능력이 있는 사람은 면책받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파산신청자들이 빚을 진 곳이 전에는 금융기관, 개인, 사채업자 등으로 다양했는데 지금은 카드빚을 갚지 못한 경우가 80~90%나 된다고 한다. ‘외상카드사회’가 빚어낸 불행의 한 면이다.
정부는 신용카드로 상품권을 살 수 있도록하는 법을 만들겠다고 한다. 카드로 산 상품권을 되팔아 현금으로 만들수 있으니 이 제도는 결국 ‘더 많은 채무를 지도록 유도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정부가 앞장 서서 ‘카드로 인한 불행’을 자꾸 조장하는 것이 아닌가. 외상카드의 무서움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그것이 ‘사망으로 가는 불행의 티켓’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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