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문명은 아직도 베일에 쌓여있다. 안데스 산맥에서 꽃을 피웠고 4천년의 역사를 지닌 왕국이었다. 13세기 ‘망코’라는 전설적인 인물이 나타나 쿠스코에 도읍하고 태양의 신전을 축조하며 스스로 신의 아들인 ‘잉카’가 되면서 고대국가가 형성되었다. 여타민족을 정복하여 대제국이 되었지만 1532년 스페인의 군인 ‘프란시스코 피사로’에 의해 멸망한다. 위대한 대제국이 어찌해 200명도 안 되는 스페인 군대에 항복했는지는 지금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다만 그들의 전설에 의하면 창조신인 “피라코챠”는 얼굴이 백색으로서 적동색인 인디오와 다르며 이 신이 바다를 걸어서 떠나며 언젠가는 사자를 보내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활 한번 쏘지 않고 순순히 무릎을 꿇은 점으로 보아 이런 개연성을 유추하게 한다.
마지막 잉카였던 ‘아타우 알파’는 “나를 풀어준다면 내가 갇힌 방의 크기 만한 금덩어리를 주겠다.”했고 피사로는 약 70억 달러의 금덩어리를 챙겼다. 그리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왕을 끝내 죽였다. 그것도 세례를 받는 조건으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유체에 대한 미라 풍습 때문에 시신이라도 보존할 것을 염원했기 때문이라 한다.
1096년 제1차 십자군 전쟁도 비슷한 비극이 재연되었다. 성지 탈환을 위해 노도와 같이 예루살렘을 함락한 그리스도 교도들은 맨발로 찬송가를 부르며 열광했다. 닥치는 대로 이슬람교도 7만 명을 학살하였으며 성안에 있던 유대교들도 예외없이 죽였고 죄없는 민중들이 피난한 사원에도 불을 질렀다. 거리에는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모든 것을 약탈한 후 그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참배했다. 그로부터 88년 후 이슬람의 살라딘 장군은 예루살렘을 공략하여 탈환하지만 학살이나 약탈은 없었다. 그리스도 교도들의 생명을 보장해주었고 돌아갈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대부분 종교라는 갑옷을 입은 문명은 광기를 띄기 일쑤이고 이단을 처단하는 칼날은 냉혹하고 잔인하다. 특히 역사의 전면에 나타나 문명을 파괴하거나 충돌을 야기한 쪽은 기독교였다. 잉카문명을 멸망시킨 스페인이나 예루살렘을 학살한 십자군도 서구문명이다.
9·11 뉴욕테러이후 문명간의 충돌을 현대문명의 새로운 진화현상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아졌다. 공산주의 붕괴를 본 후꾸야마는 ‘역사의 종말’에서 전세계의 가치관이 자본주의화할 것이라는 낙관론을 폈지만,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에서 미래는 서구의 오만함과 이슬람의 편협함, 중국의 자존심이 복합적으로 얽혀 가장 위험한 충돌을 야기할 것이라는 비관론을 내놓았다. 그는 또 서구의 앞날은 ‘이슬람이 문제’라는 말로 그들의 부활을 강조했다.
서구문명의 수장 격인 미 영 연합군이 바그다드를 함락했다. 폭격 당한 흉물들이 방치되고 후세인 동상은 거리에 뒹굴고 있다. 물도 전기도 끊어지고 시민들의 약탈이 이어지는 시가지는 권력의 진공상태다. 아나키즘(Anarchism)적 정신적 공황이 이슬람을 더욱 황폐화시키고 있다.
‘문명이란 잡다한 망상들로 테를 메워 얽어놓은 안경과 같다’는 석학 예이츠의 풍자(諷刺)에서 해학적인 골계미를 본다. 죽어가면서도 건강이 회복된 것처럼 매혹적인 빛을 발하는 폐병과 같은 것이 문명이라고 언급한 ‘간디’의 혜안이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제갈 태 일(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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