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씨춘추에는 다른 사람에게 들킬것을 염려한 나머지 자신의 귀를 막고 종을 훔치려 했다는 어리석은 도둑이야기가 한 편 실려 있다.
진나라 권력다툼에서 구세력들이 축출되면서 그 핵심이었던 범길사의 가족들은 모두 이웃나라로 도망을 쳤다. 이 몰락해 버린 집에 훔칠 것이 있을 줄 알고 한 도둑이 들었는데 가져갈 물건은 하나도 없고 대문에 걸려있는 큰 종이 눈에 띄었다. 그는 그 종을 훔쳐가려고 생각했으나 혼자서 옮기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그래서 종을 조각 내어 가져가려고 망치로 쪼개기 시작했다. 망치로 내리치는 순간 엄청나게 큰 소리가 났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들을까 무서워 얼른 자기 귀를 틀어막았다. 자신의 귀를 막으면 안 들리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듣지 못하리라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양심을 속이는 어리석은 사람을 비유하여 귀 막고 도둑질하는 사람, 엄이도령(掩耳盜鈴)이라는 말이 생겼다.
요즘 돌아서면 탄로날 거짓말로 버티는 정치인들의 이야기가 매일 이어지고 있다. 김영완의 150억이 순식간에 그 몇 배로 튀겨지더니 돼지 저금통으로 선거를 치뤘다는 이야기가 거짓말이 되고 있다. 그야말로 정치권의 비리가 뒤집어지면서 우리의 경제와 남북 문제는 그 시기를 놓치고 있다.
그런데 이 어려운 시기를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어렵다는 이야기만 하고, 모두가 남을 탓하고, 모두가 자신의 이익만 움켜쥐려는 형국이다. 집권 여당의 신구 세력의 다툼이나 내년 총선을 겨냥하고 버티는 여야의 기 싸움을 보면 우리의 현실 상황에는 아예 귀를 막고 있는 듯하다.
벌써 20년 가까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핵폐기물 처리장은 지역 곳곳의 주민정서를 갈래갈래 찢어놓고 있다. 어차피 수력이나 화력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우리의 형편에는 우리 국민 모두가 머리가 아닌 가슴을 맞대고 걱정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모두가 자신의 소리만 외치고 있을 뿐이다.
남태평양 솔로몬 군도의 벌채 방법은 좀 특이하다. 도끼나 기계톱으로 밑둥을 자르는 것이 아니라 나무꾼이 새벽마다 그 나무에 올라가서 나무에다 대고 목청껏 소리를 질러댄다고 한다. 이렇게 삼십여일을 소리치고 나면 이상하게도 그 나무는 죽어서 쓰러진다. 새벽마다 질러대는 고함소리가 그 나무의 영혼을 죽여버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뭐 그럴려고 했는데, 요즘 들면서 왠지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 경제, 노동, 교육 등 곳곳에는 귀를 막고 자기 소리만 질러대는 사람들뿐이다. 정치권에서는 자기 변명을 위한 고함만이 난무하고, 경제계도 그렇고 교육계도 제각기 제소리뿐이다.
매일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보면서 냅다 고함을 지르는 게 우리의 일상이다. 직장에서, 교통지옥인 거리에서, 장마에 녹아버린 농작물앞에서, 사람들은 얽혀드는 곳곳에서 소리치고 으르렁댄다. 살인을 부르는 카드청구서가, 뛰어오르는 담배값이, 우리의 귀에다 대고 하루종일 고함을 지르고 있다. 솔로몬 군도의 나무를 생각하면 우리 모두가 살아있는 게 기적이다.
이제 우리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자신의 귀 막고 도둑질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그 잘못을 끌어막느라 오히려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는 일은 더더욱 없어져야겠다.
한 걸음씩 물러서서 진정으로 우리가 함께 살아갈 방법을 생각해야 할 시간이다. 우리 모두가 우리의 운명을 떠받쳐야 할 시간이다. 벌써 우리의 시각은 저만큼 멀어져 가고있다.
김 일 광 <포항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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