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정치의 시대’또는‘정치화의 시대’라고 불리고있다. 이는 인간생활의 일체가 정치와 같이 결부되어짐으로써 인간생활의 행복과 불행이 곧 정치의 선악에 의해서 결정적으로 또는 크게 좌우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는 폴리스의 행복’이라고 했다. 정치학자들은 역사의 상황을 달리함에 따라서 제각기 다른 문제의식을 갖고 정치에 대한 다른 인식을 가져왔다. 정치관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자면 하나는 문제해결적 정치관이고 다른 하나는 문제야기적 정치관이다.
문제해결적 정치란 정치를 선한 것으로 보려는 이상주의자들의 견해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정치란 정치세력들이 사회가 당면한 여러가지 현안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를 의미한다. 이런 정치에서는 정치세력들의 정치활동에 있어서 일차적 목적이 사회의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다. 권력의 장악은 이차적 목적이며 일차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추구한다. 여기서 정치세력들은 경쟁은 하되 투쟁하지 않으며 정치활동은 규칙을 지키면서 상생을 이상으로 하는 넌 제로섬(non zero-sum)게임을 하게된다는 것이다.
문제야기적 정치란 정치를 사악한 것으로 보는 현실주의자들의 견해이다. 이들이 말하는 정치는 정치세력들의 일차적 목적을 사회의 문제해결보다는 정권장악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정치에서도 정치세력들은 그를 듯한 대의명분을 내세워 그들의 일차적 정치활동 목적이 마치 사회의 당면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있는 양 가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실질적이고 일차적인 목적은 언제나 권력장악에 있다. 여기서 정치세력들은 경쟁이 아닌 투쟁을 일삼고 정치활동은 기존의 사회규칙들을 파괴하면서 오직 권력장악만을 위한 제로섬(zero-sum)게임을 전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를 종합하면 정치를 보는 견해가 둘로 대립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쪽은 정치의 합리적 기능을 중시하는데 대하여 다른 쪽은 그것의 비합리성을 강조한다. 한쪽은 정치를 목적론적 관점에서 보려는데 대하여 다른 한쪽은 그것을 발생론적으로 보려고 한다. 그리고 한쪽은 인간성에 대하 낙관주의적인 입장에서 정치를 보려는데 대하여 다른 한쪽은 비관주의적 입장에서 정치를 보려고 한다. 이와 같이 정치가 서로 반대되는 가치와 감정을 아울러 포함하고 있는 사실이야말로 정치의 본질이며 또한 참된 의의이기도하다. 그래서 뒤베르제(M.Duverger)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신(Janus)상이야말로 정치의 가장 심오한 현실이요 본질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정치에 관한 상반된 두 가지 견해는 어느 편이 정당한 것일까? 얼핏보기에는 한쪽이 정당하면 다른 쪽은 잘못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쪽도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 없으며 두 견해는 모두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왜냐하면 정치는 대립과 모순과 분화와 상극을 보이는 문제야기적 정치를 전제로 하면서, 그 대립과 분화를 통하여 일체성을 수립하는 문제해결적정치를 궁극적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 필요로 하는 정치는 문제해결적 정치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이러한 정치라야 정치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의 본질적 기능은 인간 생활에서 발생하는 대립·분화·투쟁의 계기를 전제로 통일적인 의사 또는 질서의 형성에 있다. 그러므로 정치라는 것은 끊임 없이 발생하는 모순·대립·분화로 고민하는 인간이 자신을 구제하기 위하여 행사하는 인간에 의한 최고·최선의 기술이요 방법이라고들 한다. 이런 의미에서‘정치는 하나의 예술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통일된 한반도에서 대립·분쟁·갈등이 종식된 가운데 자유·평등·평화의 가치를 향유하면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은 7천만 겨레의 소망을 이뤄줄 최고·최선의 기술로써 정치, 예술로써의 정치가 ‘정치화 시대’ 한국정치의 모습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경 태 <대구사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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