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히 먼 길 떠나신 서암(西庵)노사께서 마지막 남기신 말 중에 이런 말씀이 있다.

한 생을 사시고 남기실 말씀이 없습니까? “없다.” 그래도 한생을 사셨는데 무슨 말씀이 없습니까? “없다.”
그래도 누가 물으면 무어라 할까요? “그 노장 그렇게 와서 그렇게 살다 그렇게 갔다 해라.”
스님 자신의 앞날과 뒷날에 자신이 있습니까? “앞과 뒤 그런 망상하지마라.”
좋은 법문하나 해주시지요? “가만히 있어봐라. 물은 흐르고 새는 노래하고 꽃은 핀다.”
우리는 모두 인연위에 서있다.
인연은 그 어떤 실체도 없으면서, 서로가 서로를 의지해서 일어난다.
그 무엇 하나 단절됨없이 우주는 연기의 강을 이루고, 시간의 강을 따라 무애자재로 흐르고 있다. 우리 인간은 인간대로 또 인연의 강을 이루며 살고있다.
이 우주, 이 땅, 이 인간 그 무엇도 멈추고 있는 것은 없다. 이 모두가 인연을 통하여 살아서 꿈틀거린다. 무상의 실상위에서, 무아의 실상위에서 인연은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붓다는 잡아함경에서 이렇게 말한다.
‘보아라! 모든 것은 인연으로 충만되어있다. 그 무엇도 인연을 떠나는 것은 없다. 그럼으로 그대들은 인연의 실상을 잘 보아라. 잘 관찰하여라. 그리고 인연을 잘 지어라. 인연으로부터 괴로움과 기쁨이 나온다.
그러나 인연의 밑바닥에는 그 무엇도 그 어떤 실체도 없다는 사실을 알 때 인연의 그릇된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지 않을 것이다. 인연의 실상을 아는 자만이 인연을 잘 사용할 것이다. 기쁨을 위하여 어떻게 인연을 사용해야하는지 알 것이다. 인연을 아는 자만이 고요한 기쁨 속에서 길을 알 것이다.’
이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현상과 본질(법)은 대립의 관계가 아닌 화합과 조화의 모습이다.
모든 인연은 걸림이 없이 서로가 서로를 배척하며 끌어안고 받아주고 서로를 비추면서 거대하게 무한하게 흘러가고 있다. 모든 현상은 수용과 분출을 통하여 역동적으로 흐르고 있다.
모든 인연은 현상과 본질을 수용하여 무애자재하게 전체의 생명이 되어서 흐르고 있다. 인연은 포용하면서 포용되는 조화의 세계이며, 전체와 부분 그리고 부분과 부분이 어우러지는 무한의 세계이다.
이 세상은 인연으로 충만되어 있으며 인연의 진리가 흐르고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진리다. 진리에 눈 뜬 사람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은 진리이다. 모두가 진리임을 확신해야한다.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것이 이 인연의 진리임을 보아야한다.
이 인연의 실상(實相)에 눈 먼 것을 망상(妄想), 전도(顚倒), 착각(錯覺). 무명(無明)이라한다.
인위의 눈으로 보지 말라. 만들어진 눈으로 보지 말라. 그대의 눈으로 보지 말아라. 그대로의 사실에서 눈떠야한다.
인연 아님이 없음을 여실(如實)이 볼 때 우리는 눈 뜬 사람이라고 한다.
인연의 눈으로 볼 때만이 하늘을 나는 새, 기어다는 지렁이 한 마리, 잡초풀 하나,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하나, 처마에 떨어지는 물방울 하나가 우주의 인연으로 오고 가는 것을 알 것이다.
이 우주는 인연의 끝없는 전체성이며, 끝없는 생명성이며 무애자재성이다. 우리 모두가 우주의 하나임을 보고 확신할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눈앞에 일어나는 모든 인연이 진리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인연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면. 이 삼라만상이 모두가 다 진리임을 알 것이다.
해월 스님 <동화사 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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