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일간지에 한반도는 뜨거워지고 있다고, 그래서 ‘산림 천지개벽’이라는 표제로 엄살을 떨어뒀다.
최근 20년간 소나무 면적이 33%나 줄었다며, 소나무가 벼랑에 몰렸다고 했다. 한라산에서는 구상나무가 사라져가고 소백산의 천연기념물인 주목들이 1000여 그루나 중태에 빠져있다면서, 그래서 금방 무슨 괴변이라도 일어나 우리 인간들의 생존까지 위협 할 듯 한 느낌이 오도록 ‘천지개벽’이라는 머릿글자로 큼지막하게 다루어 놓았다.
북반구에서 기온이 1도 올라가면 수직적으로는 143m, 수평적으로는 150 km까지 식물생태계는 온대화 된다는 이론에 의거한다면 21세기 동안 4도 상승에 따라 한라산은 구상나무며 눈향나무 시로미 들쭉나무 돌매화나무 등등의 한대성 식물은 완전히 사라져갈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하늘이 하시는 일을 어쩌겠다는 것인가? 그렇게 변천함으로서 우리가 무슨 큰 손해라도 본다는 뜻인가?
사라지는 것이 있으면 나타나는 것도 있는 법이다. 남부 해안 도서지방에서나 볼 수 있던 가시나무며 너도밤나무 같은 온대성 상록활엽수들이 포항은 물론 대구며 구미로 이사를 와서도 겨울나기를 너끈히 할 수 있게 되어가고 있다. 옛날 옛적 영일만 일원에 거대한 미림을 이루었던 풍향수[ 속칭 풍나무] 같은 귀한 수종들이 저온화 시대를 맞아 홀연 사라졌다가 어느새 포항 지역에서 겨울나기를 잘하고 있음을 본다. 저절로 가고 절로 새롭게 되고 있다.
근년에 이르러 참나무의 창궐은 주목할만한 변화다. 어차피 미구에는 한반도의 산들이 참나무 주림(主林)의 시대를 열어가게 되어있다. 그런데 이 참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이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숯이나 굽고 도토리묵으로 좋다는 것이 고작이다. 좀더 아는 사람은 서구에서는 값비싼 오크가구며 포도주나 위스키를 숙성시키는데 필요한 술통을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될 나무라는 정도다.
이 나무들이 울창하면 쌓이는 낙엽이 침엽수와는 판이하게 별난 것이다. 차곡차곡 골짜기마다 퇴적되어 댐을 형성하는데, 수량방류조절기능을 발휘하여 홍수를 예방하는가 하면 가뭄 피해를 현저히 격감시켜주기도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잎이나 열매가 갖는 특수성분으로 수질개선 역할을 하여 최고급수를 내려보내는 등 마치 작은 뎀이며 정수기 수 억 만개를 산골에다 설치하는 효과를 내는 것이다. 특히 졸참, 갈참나무 같은 몇몇 품종은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적갈색 단풍으로 늦가을을 물들여서 특유의 풍치를 제공하기도 하는 다용도적인 식물인 것이다. 대형산불도 급감하게 될 것이고 산 빛도 다양하고 차원 높은 우아함으로 바꾸어 주어서 이 나라를 진짜 금수강산으로 변모 시켜갈 것이다.
지금 이러한 위대한 천지개벽 사업을 하늘이 이루어주고 계심을 감도 잡지 못한 체 마냥 소나무에 미련을 두고 보호 육성에 엄청난 재원을 낭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더 큰 문제는 전문가들이 이미 이러한 결과를 누차 예고하고있음에도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나무란 참된 나무, 고귀한, 훌륭한 나무라는 뜻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참나무림이 극성을 부려 무성하면 그 나라나 그 지역은 황금기를 맞게된다 했다. 참된 사람 참된 일들이 거짓이며 거품 같은 온갖 가식적 악업들을 밀쳐내고 서서히 일어서는 그런 밝고 참된 세상을 예고하는 감응 감동의 시대일 것이다.
최근 포항에서는 참나무 단풍축제를 준비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내연산 뒷자락 수 십리에 펼쳐진 졸참, 갈참나무의 화려한 단풍을 주제로 한 축제일 것이다. 포항이 이 땅 초유의 참나무축제를 시작하는 영광을 잡은 셈이다. 하늘의 귀한 선물을 고맙다 깨우치는 그 자체 만으로서도 축복 받은 포항이 될 것이라는 기대로 모처럼 가슴 뿌듯한 긍지를 느끼게도 한다. 덩달아서 참된 사람들이 참된 일들로 참되게 살아가는 새 시대를 우리가 앞서 열어 가는 계기이기를 기원해 본다.
이 삼 우
<기청산식물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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