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은 17대 국회 총선이 있는 해이다. 연초부터 정치권은 총선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다.
국회는 ‘민의의 전당’ ‘의회민주주의의 산실’등의 찬사가 붙어있지만 대통령중심제 아래 국회는 정치적인 위상 외에 정치권력의 30%도 될까 말까하는 ‘힘’을 부여받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 총선은 유독, 지난 총선보다 더 시끄럽게 주요정당들이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우리 국민은 17대 총선이 있는 오는 4월에 정신 바짝 차리고 현명한 선택으로 나라의 운을 개척해야 한다. 노무현정부를 밀어주기 위하여 화끈하게 열린우리당을 과반수로 만들든지, 아니면 야당 그것도 진짜 야당(한나라당, 민주노동당, 사회민주당)에게 국회를 맡겨 노정권을 견제하든지 둘 중 하나이어야 한다. 대통령제 하에서 어정쩡한 다당제는 야합과 혼란만 부를 뿐이다. 민주노동당(권영길)과 사회민주당(장기표)같은 정당은 양념으로 의회에 진출시켜, 정치의 다원화를 이룩해야 한다.
문제는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 눈을 흐리게 할 수 있는 김대중(DJ) 전대통령이라는 변수이다. 새해 첫날 동교동 자택에 모여든 1500여명이 DJ 부부에 대한 세배를 하느라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연초에 서울의 한 호텔에서 정치인과 전현직 장차관 등이 참석한 팔순잔치는 DJP(김대중+김종필)연대의 수혜로 총리가 된 이한동의원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그러나 총선을 앞두고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주류(민주당 탈당파)의원들이 우리국민의 20%가 훨씬 넘는 전국에 산재해 있는 특정표밭을 놓고 경쟁하는 듯한 예사롭지 않은 모습이다. DJ정치가 부활하는 전주곡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이들은 ‘김심(金心)’을 얻기 위해 구태를 연출했다. DJ 부부 앞에서 큰절을 하고 그 앞에 두 손 모아 앉아 얘기를 듣는 양당 의원들의 모습이 한심하다 못해 국민을 역겹게 만든다. DJ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전라도를 자기들이 상속하겠다는 속셈이 너무 뻔하게 보인다.
‘호남평야 결투’를 앞둔 시점에서 DJ는 이들의 충성경쟁을 즐기느라 표정관리 해야 할 지경이다. 항간에서는 DJ는 노대통령의 뒤에 있는 ‘후통령(後統領)’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노정권은 더 나아가 정상회담과 관련, 불법송금을 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있는 임동원씨등 6명을 사면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들에겐 호남표가 어디로 가느냐는 것이 이번 총선을 좌우하는 최대 변수이다. 이미 그 힘은 1987년 13대 대선에서 DJ가 전통야당인 통일민주당을 깨고 만든 평민당에서 위력을 발휘한 이후, 신민주연합당-통합민주당-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으로 이어져 총선마다 제1야당이 되고, 두 번의 대선에서 정권을 창출한 저력을 나타낸 바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6.10항쟁이후 쟁취한 민주헌법 아래 출범한 역대정권 중 가장 부패했던 DJ대통령의 탄생과 부활은 역설적이게도 한나라당내 수구파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서청원, 강재섭의원 등 당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구 정치인들은 DJ가 표적으로 삼아온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시대에 ‘끗발’(?) 날리던 분들이다. 이제부터라도 수구파가 물러나고 개혁적(능력은 기본이고)이고 도덕적인 인물로 한나라당이 환골탈태한다면 DJ세력은 설 땅이 없을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후통령을 노리다가 실패했지만 후통령의 탄생은 역사의 후퇴요, 민주주의의 불행이다. 역사와 국민은 조국의 전진을 갈구하고 있다.
김 정 모
<미디어스피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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