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동맹파로 분류된 외교통상부 대미라인 일부직원과 자주파로 분류된 국가 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 직원들 간의 잠재적 갈등이 외교통상부 관리들의 대통령에 대한 부적절한 폄훼발언으로 이어져, 노무현 대통령을 분노케 했고 드디어는 외교통상부 장관의 경질과 발언에 관련된 공무원들을 징계하기에 이르자, 국가안전보장회의측 손을 들어준 셈이 되어 향후 참여정부의 대외·대미정책의 향배가 주목을 받고 있다. 여기다 1월 17일 한미 양국이 용산의 유엔군사령부와 연합사령부를 경기도 평택으로 이전하는 탈서울을 합의하고 해외 주둔미군에 대한 미국측의 감축·재배치 계획까지 알려지면서, 참여정부 출범이후 우여곡절을 겪어오면서 가까스로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한·미 관계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되어 국민을 불안케 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는 한반도를 둘러싼 기존질서의 유지냐 아니면 새로운 질서의 창출이냐를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선택을 유권자들은 강요받았다. 그동안 대선이나 총선을 여러차례 치러왔지만 대북정책과 대외정책을 놓고 후보간 입장차이가 16대 대선에서 만큼 크게 드러났던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민족공조를 강조하는 민족우선정책과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체제우선정책 사이에 분명한 이분법적인 대립구도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대미정책에 있어서 노무현후보는 자주외교를, 이회창후보는 동맹외교를 강조함으로써 두 후보는 자주와 동맹으로 대립각을 세웠다.
자주외교를 강조했던 노무현후보가 동맹을 강조하는 이회창후보를 따돌리고 대통령에 당선·취임한지가 1년이 되었다. 하지만 대선기간에 표출되었던 입장차이는 좁혀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더 복잡·다양하게 벌어져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상대방을 숭미세력·반미세력으로 몰아 상호비난 하면서 남남갈등의 골을 깊어지게 하고 있다. 자주외교를 강조하는 측은 북한에 대한 대북포용은 강조하면서 한·미 관계의 중요성을 내세워 동맹외교를 강조하는 측에 대한 포용은 인색하다. 동맹외교를 강조하는 쪽도 자주외교를 강조하는 쪽에 대해 이해를 해보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한국과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형성된 냉전체제하의 안보환경에서 공통의 목적과 이해를 기반으로 반세기동안 혈맹으로서 긴밀한 안보협력관계를 지속시켜 왔다. 탈냉전이라는 새로운 안보환경에 직면하여서도 양국은 다원적·포괄적인 안보동반자로서 동맹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 과정에서 한국에게 미국은 안보의 보호국으로서 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제반분야에서 중요한 동맹국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한·미 동맹관계가 주권국가간의 대등한 관계가 아닌 강대국과 약소국간의 비대등한 관계로, 보호자와 의존자(patron-client) 관계가 되어 미국에 의해 주도되었기 때문에 한국안보의 한국화가 아닌 한국안보의 미국화라는 비대칭적인 안보협력 체제가 되어 왔다.
그래도 한·미양국은 지난 반세기동안 튼튼하고 빈틈없는 협력관계에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민주화와 더불어 정치상황이 변하면서 한·미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동안 미국의 기여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미래안보에 있어서 미국의 역할, 북한의 위협을 보는 눈, 통일과정에서 미국의 기여에 대한 인식이 급변하면서 국민일부, 특히 젊은 사람들의 반미감정을 촉발시키자 양국간에 벌어져 가고 있는 균열이 봉합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들이 한국과 미국에서 점증되고 있다. 여기에다 우리정부를 이끌어 가는 중요 인사들의 애매모호한 언행이 대미관과 대미인식에 변화가 있는 것으로 미국의 주류사회에 비춰지게 되면서, 한국에 대한 의구심을 고조시켜 미국의 조야에 반한감정을 유발시키고 있다. 그 결과는 향후 한·미 관계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를 확산시키고 서울과 워싱턴 사이를 불편케 해서 한·미 동맹에 대한 양국의 현재 시각은 차갑다.
이런 상황에서 참여정부는 아직 구호 외에 실체가 분명치 않은「자주외교」를 앞세워 시행착오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향후 대미정책과 한·미 관계를 우려케 하고 있다. 그래서 참여정부의 대미외교에 대한 비판자들을 양산시키고 국민들을 불안케 하며, 외국의 각종 신용기관에게는 신용등급의 상향조정을 주저케 하는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 최근에 표출된 외교통상부와 국가안전보장 회의의 갈등이나 외국자본의 한국투자 감소는 부작용의 사례라 하겠다. 정부는 더 이상 자주파니 동맹파니 하면서 편가르기를 그만두고 대미정책의 부작용을 극소화시키고 한·미 관계를 재조정해서 관계 정상화가 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사실상 자주와 동맹은 구분해서 생각할 수 없다. 동맹없는 자주는 고립을, 자주없는 동맹은 예속을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힘의 논리만 적용될 수 있는 정글과 같은 국제사회의 질서와 국가이익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고있는 냉엄한 국제정치의 구조 속에서 말의 유희로 대립각을 세우거나 오기로 대외정책에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어리석음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자주와 동맹이 조화·균형·보완되도록 한?미관계를 재조정·강화시켜 새로운 협력의 21세기를 열어야 할 것이다.
이 경 태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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