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최대 석유기업 ‘유코스’가 여당과 함께 야당에도 정치자금을 주었다가 지금 죽을 지경이다. 지난해 12월에는 검찰과 국세청이 덤벼서 회장을 탈세혐의로 구속했고, 대주주 한 사람은 이스라엘로 도망갔다. 그리고 최근에는 황당무계한 행정명령을 받았다.
북시베리아에 있는 유코스의 자회사 아르크티가스는 지방자원환경청으로부터 “주변환경 보전을 위해 녹지를 조성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연중 8개월간 영하 50도 안팍으로 내려가는 凍土에 나무 심고 잔디 심어라니…. 회사 직원들은 처음에 ‘농담’이겠지 했다. 그런데 추가지시가 또 내려왔다. “2월까지 이를 이행하지 못하면 벌금을 부과할 것임”
여당과 야당에 양다리 걸치는 기업을 철저히 괴롭혀서 기업의 멱살을 완벽히 틀어쥐겠다는 속셈이 빤히 보인다. 이 사실이 외신을 타고 세계에 전해져 망신살이 뻗혔는데, 다른 기업들의 ‘비명소리’나 ‘볼맨소리’는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러시아 기업도 죽어지내는 것이 상책인 모양.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에서 국내 10대기업이 야당에 준 돈은 속속 밝혀지고 있는데, 집권당에 준 돈에 대해서는 기업들이 찔끔해서 바른말을 피한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그쪽에 불법으로 제공한 선거자금은 없다. 있더라도 밝힐 수 없다” 특히 은행빚이 많은 기업들은 “집권층이 앙심을 품고 자금줄을 막아버리면 우린 한방에 간다”고 손사래를 친다.
수사에 협조하면 관용할 것이고, 아니면 좋지 않을 것이라고 수사팀이 구슬으기도 하고 어름장도 놓아보지만, “내가 받은 불법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직을 사퇴하겠다”는 선언이 있고부터 기업들의 입에 빗장이 걸렸다. 러시아나 한국이나 정권과 기업의 관계는 다 그렇고 그런 모양이다.
그래도 할 말은 하는 경제인도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박용성회장은 꾸준히 ‘재계의 말짱’구실을 하고 있다. 떼를 쓰면 통하는 ‘떼법론’에, 한 기업이 잘 되면 줄줄이 따라오는 ‘쥐떼론’을 거쳐 지네론, 왕사쿠라론, 신경제 강박증론, “3류정치가 경제발목 잡는다”며 정부와 정치권을 호되게 몰아부친다.
그는 또 “중국 처럼 기업에 극진히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행정과 정치의 서비스 수준을 경제수준에 맞춰달라는 것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바라지도 않는다. ‘기업할 수 있는 나라’만이라도 되게해달라” 며 애소도 했다.
“경제는 암에 걸렸는데 주름살 수술이나 한다”며, 깃틀규제는 풀고 핵심부문은 그냥 두는 ‘몸통규제’, 똑같은 사안을 두고 여기저기서 간섭하는 ‘겹규제’, 한쪽을 푸는 대신 다른 한쪽을 새로 규제하는 ‘새규제’등등 이런 족쇄를 달고는 기업이 마음껏 ‘전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얼마전 경주에서 중고 교사들을 모아놓고 교육정책도 많이 나무랐다. “입시기술자만 찍어내는 현 교육은 기업 입장에서 볼때 A/S도 안되고 반품도 안되는 최악의 인재공급”이라 하고, “국민소득 5천달러시대의 교육으로는 2만달러시대를 열 수 없다”했다.
교육이 이러하고, 행정과 정치가 그러하니, “이대로 가면 일본의 앞선 기술과 중국의 값싼 임금 사이에 끼여 우리는 말라죽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했다. 다들 공감하는 말을 그는 商議회장의 입장에서 대변한 것인데, 괘씸죄에 걸릴 것을 각오하고, “고칠 것 투성이인데, 아무도 쓴소리를 안하면 나라꼴이 어찌되겠느냐”며 목숨걸고 나섰다.
그동안 바른소리를 하다가 ‘급소’ 맞고 쓰러진 경제단체장들이 한 둘 아니었다. 특히 전경련 회장자리는 ‘저승 입구’처럼 보였다. 이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위험한 자리’가 될지 알 수 없으나, 박용성회장의 바른 소리가‘나라 살릴 소리’로 들린다. 정치권이 기업의 멱살을 잡아흔드는 것은 정치자금 뜯어내기 위함인데, 이제 ‘돈선거’ 안한다니, 기업을 놓아줄 때도 됐고, 이것은 바로 나라망신을 피하고 2만달러시대로 뛰는 길이다.
서 동 훈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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