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일 근무제 실시로 벼르고 벼르던 태백산 등산을 했다. 태백산은 백두대간의 영산으로 높이가 1567m나 되지만 경사가 완만하여 나같이 무릎관절이 좋지 않은 사람도 등정이 가능하다기에 따라 나섰다. 주목 군락지인 태백산의 설경은 환상적이라는데, 마침 지난밤에 눈이 내려, 눈꽃을 달고 끝없이 펼쳐질 태백의 모습을 그리며 준비를 서둘렀다.
소풍날을 받은 초등학생 마냥 들뜬 마음으로 밤을 새고 해도 뜨기 전에 산으로 향하였다. 2시간 남짓 달려서 도착해 보니, 그 너른 주차장이 대형 버스와 승용차로 꽉 찼고, 수만 명은 됨직한 등산 인파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은백색 눈이 널따란 등산로에 흰 절편을 얹어 놓은 듯 켜켜이 쌓여 있다. 사가사각, 뽀득뽀득 걷는 이의 체중과 신발에 따라 미묘하게 달리 들리는 눈 소리를 들으며 산길을 올랐다. 기대했던 눈꽃은 볼 수 없었다. 봄을 고대하는 나무들은 어제 내린 눈을 훌훌 털어 버리고 빈 가지만 하늘을 향한 채 의연히 서서, 눈보라를 일으키며 몰아치는 바람 따라 위잉위잉 길게 울며 제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수령이 다했는지 고사목이 된 주목이 많이 보인다. 잎사귀 하나 달지 못하고 잿빛으로 탈색된 몸뚱이와 가지들이건만, 옛날의 영화를 상징하듯 품새가 귀해 보이고 격이 있다. 공해 없는 심심유곡에서 해와 별과 바람을 벗하며 욕심 없이 살았기 때문이리라. 땜질한 주목도 많이 보인다. 고사의 위기에서 구하고자 함이었을지라도 사람들로 인해 그리 된 것이기에 더욱 안타깝다. 주목 군락의 명맥을 유지하려고 어린 주목을 많이 심고 대나무로 울타리를 쳐서 생장을 돕고 있기에 그래도 위안이 되었다.
마침내 정상의 천제단에 다다랐다. 눈 아래 준령들이 누워 있다. 햇살은 밝고 따사로우며, 하늘은 더욱 가깝다. 예부터 이곳에 부임하는 수령들이 제사를 올렸다는 천제단은 높이 3m, 둘레 27m로 자연석을 쌓아 만들었다. 수많은 등산객이 절을 한다. 천년 세월동안 묵묵히 때묻은 인간들의 기원을 싫다 않고 들어주는 천제단이 신령스러워 보였다.
하산길의 재미도 만만치 않았다. 비료 포대로 간이 썰매를 만들어 눈길을 타는 젊은이들이 풋풋하고 싱그럽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샘솟는다는 용정의 물맛은 가슴속이 뻥 뚫리는 듯 시원하였고, 축제 기간은 지났지만 아직도 설치되어 있는 눈 조각품 전시회는 또 다른 볼거리였다.
산에는 왜 가는가? 산이 거기 있어 간다고들 한다. 말없는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서 굳은 의지를 읽을 수 있고, 나목으로 겨울을 나는 나무는 인내를 배우게 하며, 세파에 지친 우리네의 심신을 말끔히 씻어주는 대자연의 순수함과 고요로움이 있기 때문이리라.
주 5일제 근무의 시대가 열렸다. 선진국은 벌써 이 제도가 정착되었고, 일벌레로 소문난 일본도 시행하고 있다. 우리 나라도 몇몇 기업이 앞서 시행하였지만, 사회 전반적으로는 제 여건이 성숙되지 않아 미루어 오다가, 2003년 8월 29일 주 5일 근무제 도입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시행시기는 2004년 7월로 늦춰졌다.
노동 시간을 단축하고 개인의 여가 시간을 늘려서 삶의 질을 제고함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노동 시간이 많을수록 자기 계발에 둔감해지고, 가족과 즐기는 시간이 줄어들며, 문화 생활도 어렵게 된다. 열심히 일하고, 적당히 쉬면서 삶을 향유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외국에서는 이 제도가 일자리 나누기 등으로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한 한 방안으로까지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도 한다.
산에 가는 사람이 앞으로는 더 많아질 것이다. 따라서 산의 정기를 흩지 않고 산의 모습을 훼손하지 않는 자제력이 우리에게 요구되며,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며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겸손과 지혜가 필요하다하겠다.
박 미 자
<경상북도교육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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