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세계에서 1,2위를 다툴 정도로 높다는 보도가 나오더니, 최근에는 출산율이 또 세계에서 1,2위를 다툴 정도로 낮다는 보도가 지면을 장식한 바 있다. 출산의 문제는, 식량의 문제와 더불어, 장기적으로 보면 경제적 관점에서뿐 아니라, 특히 국가안보의 관점에서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이웃 일본보다도 출산률이 더 낮다고 하니, 정부적 차원에서 걱정만 하고 있어서 될 일이 아닌 듯하다. 프랑스 등지에서 실행되고 있다는 출산장려금 제도의 도입을 정부가 생각하고 있다는 보도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일 것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다른 분야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단기적인 땜질식 처방으로 넘어가려 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향후 20년 혹은 30년 후의 경제활동의 모습이 어떨지, 그 경제에서 사람 즉 인력이 차지하는 위치가 지금과 어떻게 다를지 등을 세심히 검토해본 후에 인구정책을 수립하고 필요에 따라 수정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경제수단이 단순히 산술적 노동력의 양에 의해 결정되던 시대라면 노동력이 될 아이를 많이 낳아 노후를 대비해야 되겠지만, 단순 노동력이 경제성을 상실한 지금 더 이상 다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서양적 개인주의의 팽배로 혹은 소위 웰빙(well-being)적 사고의 확산으로, 자식을 위한 희생보다 부부 중심의 윤택한 삶을 선택한 결과로 초래된 현상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교육비가 공교육비를 크게 상회하는 오늘날의 교육열기에 비추어 보면, 하나만 낳더라도 자식에게 가능한한 모든 교육기회를 빠짐없이 제공해 주고자 하는 교육적 이유에서 둘 이상의 출산을 꺼리게 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적어도 교육적 이유가 출산율 저하의 한 원인이라면, 직접적 국방의 문제뿐 아니라 교육의 문제도 국가안보의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최근 교육부인가 교육혁신위원회인가 하는데서 “교사평가”의 안도 내어놓고 입시와 관련해 “교육이력철”의 아이디어도 내놓았지만, 적어도 출산의 문제까지 고려한 근본적인 교육개선책인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설사 우리가 아이들이나 노인들의 복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복지국가를 염두에 두고 있다 하더라도, 다시 말해 단순히 장래의 국가적 ‘인재’양성만으로 고려해 보더라도, 부모의 경제사정과 관계없이 모든 아이들이 지적 도덕적으로 최대한 성장할 수 있도록 국가가 ‘모든’ 교육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저 농어촌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무상교육을 확대해 나간다는 정도의 소극적 조치로는 장기적으로 국가경제와 안보에 대비하는 교육을 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역간 혹은 계층간 균형발전을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먼저 국민의 일부가 아닌 전부가 양질의 교육의 수혜자가 되도록 해야할 것이다. 또, 범법자의 출현을 미연에 방지하여 치안유지나 교도소 운영과 관련된 막대한 사회적 지출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모든 국민 특히 소외계층이 양질의 교육의 수혜자가 되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실질적인 ‘보통’교육의 실시는 궁극적으로 국력과 직결되고 따라서 국가안보문제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적 관점 뿐 아니라 국가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있는 아이들도 잘 못 키우면서 또 출산을 장려하기보다는 차라리 적은 수의 아이라도 있는 아이들을 ‘잘’키우는 것이 훨씬 중요할는지도 모른다. 국가안보의 문제는 이같이 단순히 출산율의 문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교육의 문제라는 점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또 부모가 교육비의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국가가 자녀교육을 책임질 때, 파생적으로 출산율도 늘어나게 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가 지금 알려지고 있는 것과는 훨씬 적극적으로 교육에 임해야 할 것이다. 우선 현재 국가가 맡고있는 교육적 책임을 지방으로 이양하려는 계획을 재검토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간섭은 줄이되 실질적 도움은 현재보다도 더 강화해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교육의 문제를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로 보는 대신 국방의 문제와 같이 국가적 차원의 문제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특히 시골이나 도시 소외계층의 열악한 교육환경을 생각해보면, 이런 필요성은 더욱 부각될 것이다. 학교급식의 실시나 컴퓨터 교육의 도입은 차라리 국가가 나서서 시골이나 소외지역 학교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양질의 교육을 절대적으로 좌우할 양질의 교사양성을 위해서도 국가가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특히 유아교육정책과 관련해 국가가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단순히 유아당 교육 혹은 양육비를 얼마씩 가정에 보조해 준다는 식의 정책보다는 무질서한 영유아교육기관을 재정비하고 국가가 직접 영유아 보육 혹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감독함으로써, 단순히 양이 아닌 질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국가 경제를 위해서든 안보를 위해서든 궁극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인력의 양이라기보다 그 질일 것이다. 지금까지의 추세에 비추어보면, 양이 아닌 질이 세상을 지배하는 정도가 미래 사회에서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출산의 장려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적은 수의 아이들이라도 지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최대한 성장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최적의 교육기회를 제공해주는 일일 것이다. 이런 문제는 자율이라는 이름 하에 지방자치단체에 미루어서만 될 일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서라도 국가가 나서서 국민보통교육을 직접 챙기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조 성 발
<포철공업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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