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종합 검진을 서울의 큰 병원에서 한다고 자랑스레 말하는 분들이 있다. 또 별로 대단하지 않은 병인데도 서울의 큰 병원 유명한 박사한테 치료를 받는다고 자랑하는 분들도 많다. 그러면서 우리 지역 병원들이 별 볼일 없다고 은근히 비하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의료는 백화점에서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상품과는 좀 다르다. 사실은 좀 다른 정도가 아니고 많이 다르다.
전자 제품은 서울 가서 사도 되고, 좋은 음식도 서울 가서 먹어도 되지만 병만은 그것이 맘대로 잘 안 되는 것이다. 병이 생기면 그 때마다 서울 가서 치료받으면 된다고 쉽게 생각할지 모르나 급성 흉통이나 급성 복통, 대형사고, 대량 출혈, 알레르기에 의한 쇼크 상태 등의 초 응급 급성 질환이 갑자기 발생하면 꼼짝없이 우리 지역 병원들의 응급의료센터로 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지역에 살지 않으면 모를까 이 지역에 사는 이상은 갑자기 닥치는 응급 질환에는 지역 내 병원을 이용하지 않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응급 질환은 절대로 예고하고 오지 않는다. 그리고 응급 질환이 발생하지 않을 권리가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평소 사람들은 자신에게 그런 응급 상황이 닥치기 전에는 그저 남의 일 보듯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리고 지역 병원에 관한 이야기를 그저 남의 일 이야기하듯이 한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법이다. 평소 별 것 아닌 병은 서울의 유명한 병원, 고명한 박사(?)에게서 치료받다가 정말로 중요한 상태, 초 응급 상황에서는 평소에 우습게 알던 지역 병원의 조그만 응급 센터에서 목숨을 맡기고 처분만 바라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우리 지역 병원, 특히 응급의료센터를 키우고 활성화해야 하는 이유이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응급의료센터의 수준을 높이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우리 생활에서 경찰서나 소방서가 중요한 것 이상으로 응급의료센터는 이 사회의 중요한 인프라인 셈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의료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그렇게 녹록치가 않아서 병원마다 적자 요인은 응급실에서 발생한다고 하면서 응급실을 홀대하는 경향이다. 응급실에서 24시간 내내 항상 환자를 볼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돈이 많이 드는 상황인데다 심한 질환의 응급환자를 한사람 보기 위해 불시에 수많은 시설과 사람이 치료에 동원되어도 건강 보험 공단에서 지급되는 의료 숫가는 쥐꼬리만하니 어느 병원인들 달가워하겠는가. 게다가 의사나 간호사 의료기사 등 의료인들마저도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게 만드는 급하고도 힘든 응급환자를 보기보다는 낯 시간에만 봐도 되는 쉽고 편한 환자만 좋아하는 경향인데다 응급실은 의료사고의 위험도 높아서 응급환자를 전문으로 보는 의사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응급실에 대한 투자가 미미할 수밖에 없도록 되어있는 꼴이다
심지어는 응급실의 치안도 문제이다. 한 밤중에 응급실에 술 취한 자들이 난동을 부려도 제재수단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치료를 빨리 안 해준다고 반말과 욕은 예사이고 심지어는 폭력까지 휘두른다. 응급실은 일반 외래처럼 빨리 왔다고 빨리 봐주는 데가 아니다. 늦게 도착해도 급한 질환을 가진 사람을 먼저 봐주는 곳이고 그 결정 권한은 전적으로 의사의 소관이다. 이런 상황을 아무리 설명해도 막무가내인 분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우리 지역 내 응급의료센터를 강화하고 활성화시키는데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한다. 응급실의 중요성에 대해 인지하는 홍보부터 해야 하고, 지역 차원에서 지원도 있어야 할 것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응급실 이용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응급실의 치안에도 적극적인 대책이 있어야 하며 응급실은 먼저 왔다고 먼저 봐 주는 곳이 아니라는 것쯤은 일반 상식으로 누구나 알아야 하는 것이다. 바로 자신들이 언제 급히 이용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 동 선(포항세명기독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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